Skip to main content

사랑하고 사랑받은 한편

몇 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아주 긴 긴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줄엔 행복이 묻어 있었고 어떤 줄은 금세 끊어질 듯 위태롭게 떨렸습니다. 산문이 되었다가 모르는 사이 운을 맞추기도 하였습니다. 줄인다고 줄여지지도 않고 애써 늘인다고 늘여지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쓴 것도 아니고 혼자 읽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눈동자 속에 몇 개의 형용사가 있었는지 수더분한 옷과 재빠른 걸음걸이가 3/4조였는지 […]

Read More

믿지 못할 나의 금연기

: 그의 마지막 담배   사람들에게는 끊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마약, 도박, 음주, 연애, 인연, 담배 등등. 어떤 이는 그 가운데 하나에 그러하고 때로는 여러 가지 병을 한꺼번에 앓기도 한다.  나는 이 가운데 어떤 것을 끊고자 시도한 적이 있다. 지독한 중독이었으나 별스레 특이한 방법을 택한 것도 아니었다. 어느 평범한 하루, 한껏 그것을 들이마신 채 나는 […]

Read More

오리칼크의 도시에 관한 기억

그것을 당신들은 몰랐다. 왜냐하면 살아남은 부족은 몇 세대 동안이나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고 죽어갔기 때문이다. ― 티마이오스   그것은 손치스라는 이름을 지닌 이집트 신관의 꿈에서 비롯되었다. 그가 사이스에서 한 신전의 관리인으로 봉직할 때 그리스의 철학자 솔론을 만나 자신이 작성한 꿈의 조서의 일부를 보여준 것이다. 나는 킬허의 고전적인 지도를 통해 그의 꿈을 다시 돌아보았고 한스 헤르비거의 […]

Read More

단 한 장의 책

마침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원하던 장소를 우리는 갖게 되었다. 세상에 없는 책이 없는 도서관이다. 그곳에서 절판된 책을 찾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세상에 하나뿐인 책이라 해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고 소실된 책이나 심지어 다른 사람의 책에 이름만 올라 있는 책을 찾는 일조차도 크게 힘든 일은 아니다. 옛 알렉산드리아나 대영박물관, 혹은 의회도서관의 사서로 일하던 사람이 […]

Read More

알렉산드리아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장소와 도저히 복구 불가능한 기억. ― 크리스티나 펠리 로시*   항구는 모처럼 동방을 돌아온 배의 소식으로 흥청거렸다. 나의 일터와 항구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지만 내 마음의 설레임은 배가 들어옴으로서 생긴 것임을 안다.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어도 각별한 친밀감으로 맺어진 항구의 관원은 그 배의 물건들을 면밀히 조사한 후 내가 필요한 것들을 먼저 […]

Read More

빗방울을 읽다

불가해한 순열의 초록빛 문자는 아니었습니다. 어디서 날아온 소식이던지 방충망의 모눈을 따라 드문드문 물방울 맺혀 나 모르는 세상의 철자가 되었습니다. 낯설고도 반가운 사연, 그렇게라도 듣게 되는 장문의 소식입니다. 빗줄기를 따라 사연도 그만큼 길었던가요. 의미 없는 의미의 심장 ― 거기에 뜻 있겠거니 모눈의 마음이 부지런히 받아서 적었습니다. 어느 아침 햇살에 잊혀지는 꿈처럼 해독解讀은 오히려 해독害毒, 조금 틀렸거나 […]

Read More

물의 마법사

물속으로 떨어지면서 물의 표면에 파문을 만드는 조약돌처럼, 물의 깊이를 측량하려 한다면 나는 물속으로 뛰어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ㅡ 끌로드 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   “올해는 모두에게 평화로운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이제 막 희생된 처녀들 이외에는 어떤 제물도 필요하지 않으며, 옥수수 농사는 이번 카투운에서 유래가 없는 풍작이 될 것입니다. 쿠쿨칸께서는 이제 치첸이차에 흑요석의 단검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

Read More

신용사회

“나를 믿을 수 있어?” “아니, 널 믿을 수 없어. 너는 너무 무능해. 너의 ST가 너무 나빠.” 오래 전에 그녀가 그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그 오래 전이 얼마 만큼의 시간인지 그는 헤아릴 수가 없었다. 분명 몇달 또는 1, 2년 보다는 더 흘렀음을 알지만 그 이상은 도무지 생각이 미치질 못했다.  그는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밖으로 나갔고 대형 […]

Read More

안개 속의 거울

내 믿지 못할 경험을 세상에 밝히도록 격려해준 P에게 이 글을 바친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 글은 내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영영 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완성도 되지 못한 이 글을 내어놓는다. 나 또한 진실을 확신하지 못한채…   실재 reality :  약간 머리가 돈 철학자가 꾸는 꿈  만일 사람이 환영이라는 것을 분석 시험한다 하면,  도간 속에 […]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