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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지 못한 꿈

냉동여행 Frozen Journey, 필립 K. 딕   ▲ 그의 지난날 그의 이름은 빅터 케밍스다. 어릴 적에 도르키라는 이름을 지닌 고양이가 비둘기를 잡아먹도록 부추겼다. 네 살 때는 거미줄에 걸린 벌을 도와주려다 벌에게 쏘였으며, 마틴이라는 프랑스 여인과 결혼했으나 이혼했다. 화가의 친필서명이 적힌 꽤 값어치 있는 포스터 한 점을 갖고 있었으나 그것을 제대로 보관했는지 아니면 찢어져버렸는지 불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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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기적

금강경에 관한 어느 책에서 승조 스님의 일화를 보았다. 환속하여 재상이 되기를 바라는 황제의 요청을 거부한 까닭에 죽음을 당하게 된 그는 마지막 칠일 동안 팔만대장경의 핵심을 궤뚫은 <보장론>을 저술했다고 한다. 스님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보르헤스를 생각나게 했다. <허구들>에 실린 단편  ‘비밀의 기적’이 그랬다. 사형을 기다리는 8시 44분에서 9시 사이, 그리고 격발의 순간에서부터 총알이 자신을 뚫고 지나가기까지의 찰나를 1년의 시간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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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의 묘약

: 약을 잃고 약을 찾다   그들은 춤추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을 축하해야 할지도 모르는 채 그들은 춤을 추었다. ㅡ 멜랑콜리의 묘약, 레이 브래드베리   그 책은 어느 약장에 꽂혀 있었을까요. 밤 늦도록 멜랑콜리의 묘약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이 책엔 발이 달렸는지 며칠 잊고 지내면 벌써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는지 찾을 길이 없곤 합니다. 아니면 “마개뽑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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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기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 Pun에 관한 짧은 Pun   어떤 제한적인 의미에서 韻이라는 것은 일종의 고품격화된 pun이다. 많은 시인들이 제 나름대로 마음 속에 운을 띄워 보지만 그것을 제대로 부드럽게 풀어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약간의 어폐가 있다고 하더라도 韻이 좋다면 그것은 아주 멋진 표현이 되거나 적어도 무난한 흐름은 된다. 나의 경우, 시를 쓰는데 있어 (별스레 그런 걸 찾지도 않았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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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작자에게

: 작자의 지은이에 관한 단상   그때 나는 한 살이었다 그때도 나는 奇蹟이었다 계속 판올림 하며 ○○년의 새해에도 나는. //이작자   휴일의 한낮을 포터블 씨디 플레이어와 함께 보내었다. 마음먹은 김에 비좁은 하드디스크에 겨우 씨디 한장 복사할 공간을 만들어 ‘Samba da Bencao’을 녹음한 것이다. 그리고 작자의 지은이(^^)와 더불어 한참을 감상했다. 지은이는 그 가운데서도 ‘Lungomare’나 ‘Summertime’의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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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쉬 백 : 回光

해가 몰라보게 짧아졌습니다. 좀 늦은 시간에 산엘 갔더니 약수터에 이르렀을 때는 벌써 어둠이 내렸습니다. 큼지막한 나무들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별이 새삼스러웠지요. 자그마한 손전등 하나를 갖고 갔는데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측백나무 빼곡한 길목 너머 어둠 속 옛길을 따라 返照의 시간이 왔습니다. 자전거엔 바퀴의 동력으로 작동하는 전조등이 달려 있었고 캄캄한 논길 다닐 적에는 ㄱ자로 꺾인 국방색 손전등이 요긴했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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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토이 인 디 애틱

노래 속의 이름은 ‘리자’였고 이야기 속의 이름은 ‘리사’였다. 그게 같은 철자의 다른 발음인지 다른 이름인지는 잘 모르지만 ‘Lisa’라는 이름을 들으면 늘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사실 그 얼굴이란 내가 그 모습을 전혀 알 수 없는 이야기 속, 또는 상상 속의 얼굴이다. 그녀는 대단한 시계 장인이 만든 ‘시계’였고 리사는 이름이었다. 할아버지가 몇시냐고 물으면 그때마다 또박또박 대답을 해주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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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 의심치 않는 어떤 미래에 대한 사소한 기록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은 벚꽃나무로 무성하다. 이제는 2차선 도로를 마주하고 선 나무들이 봄날이면 터널을 이룰 정도로 자랐으니 어느 계절이나 여기 사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그런 거리다. 가을은 가을대로 단출한 운치가 있고, 봄날에는 어떤 벚꽃길보다도 소박하고 요란스럽지 않아서 좋다. 요즘 같은 계절에는 늘 “여름날의 푸른 잎새들”이란 옛 노래를 절로 떠올리게 하는 그런 길이다. 아파트의 제일 중심에는 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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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나무 끝의 부용화 산 속에서 붉은 봉오릴 터뜨렸네 개울가 집이라 적막하여 인적 없는데 어지러이 피었다간 또 지는구나 /신이오, 왕유 木末芙蓉花  목발부용화 山中發紅萼  산중발홍악 澗戶寂無人  간호적무인 紛紛開且落  분분개차락 /辛夷塢, 王維   그 이름을 기억하거나 외우고 간직하는 것만이 영속성을 보증하는 틀림없는 방법일까. 만약 그러하다면 그것은 참 서글픈 일이다. 구구절절 옳은 말 ㅡ 사람들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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變心 : Sad Lisa

로버트 블록     “여섯시에요, 할아버지.”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시계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말썽장이 피노키오가 시계 소녀로 바뀐 것 같습니다. 피노키오의 할아버지같은 솜씨 좋은 시계공이 만든 필생의 ‘예술품’이 그녀였습니다. 그다지 특별한 사건이 없는 이 짧고도 동화같은 이야기는 마지막 부분의 반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나’는 오래된 시계를 고치러 울리치 클레임 시계점에 들렀다 우연히 알게 된 리사를 몹시 사랑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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