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팝송이란 걸 처음 들었을 때 내가 갖고 있던(사실은 내것도 아니었던) 단 하나의 카세트 테이프엔 ‘팔로마 블랑카’란 노래가 있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그 가사를 보며 즐거이 따라 불렀다. 하지만 봄날의 작은 새처럼 조잘대던 새하얀 비둘기는 너무 쉽게 날아가버렸고(88올림픽 성화대에서 한순간 사라져버린 비둘기들처럼!) When doves cry의 기타가 잠시 마음을 흔들고 <더 월>의 한 장면처럼 […]
장사익 모친의 한수
장사익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그리 열심히 노랠 들은 것은 아니지만 이분 이야기 나오면 빠짐없이 보는 편이다. 나 같은 이가 배울 점이 많아서 더 그렇다. 이분 주름살에 대한 이야기도 가끔 나오던데 노래하는 모습은 어쩐지 까이따노 벨로주와 비슷한 뭔가가 있는 느낌이다. 주름살도 그렇고. 어떤 다른 길을 갔다고 하더라도 결국 노래를 하게 될 사람들이었다고나 할까. 그의 모친께서 아들 […]
1999-2009, 변함없이
아주 아주 오래전… 어느 시인 흉내를 내며 시 몇편 끄적인 적이 있다. 그때 쓴 것 가운데 일년 전에 보았던 바다에 관한 글이 있었다. ‘변함 없음’에 관한 한켠의 부러움과 한켠의 탄식이었다. 그리고 여기 이 노래는 1년 아닌 10년의 이야기이다. 노래 속의 메시지가 사회적인 것인지 또는 개인적인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개인적인 의미로 돌아다 본다. 1999년의 겨울을 […]
경운기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 Pun에 관한 짧은 Pun 어떤 제한적인 의미에서 韻이라는 것은 일종의 고품격화된 pun이다. 많은 시인들이 제 나름대로 마음 속에 운을 띄워 보지만 그것을 제대로 부드럽게 풀어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약간의 어폐가 있다고 하더라도 韻이 좋다면 그것은 아주 멋진 표현이 되거나 적어도 무난한 흐름은 된다. 나의 경우, 시를 쓰는데 있어 (별스레 그런 걸 찾지도 않았다만) […]
플래쉬 백 : 回光
해가 몰라보게 짧아졌습니다. 좀 늦은 시간에 산엘 갔더니 약수터에 이르렀을 때는 벌써 어둠이 내렸습니다. 큼지막한 나무들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별이 새삼스러웠지요. 자그마한 손전등 하나를 갖고 갔는데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측백나무 빼곡한 길목 너머 어둠 속 옛길을 따라 返照의 시간이 왔습니다. 자전거엔 바퀴의 동력으로 작동하는 전조등이 달려 있었고 캄캄한 논길 다닐 적에는 ㄱ자로 꺾인 국방색 손전등이 요긴했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