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노란색 여행용 베개

노란색 표지의 중남미 여행안내서를 찾아 헤매었던 지난 새벽이었다. 시간이야 많다만 돈이 있나 용기가 있나. 지지리도 못난 것이 발로 뛰는 ‘지리상의 발견’은 형편이 못되어서 지도상의 발견이라도 해볼 참이었던지 아무튼 숱한 지명들이 머리속을 맴돌아서 못견딜 지경이었다. 한밤중에 그걸 봐서 뭘 하겠냐만 그 잠오는 베개 없으면 브라질이고 멕시코고 깡그리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기분이라니… […]

Read More

욕망이라는 이름의 정차

그래서 이토록 멈추어 있었던가. 무료함에 지친 저녁, 어느 영화로운 여인에 관한 인터뷰를 보다 욕망에 충실한 여자 주인공이란 말에 끌끌…… 혀를 찼다. 그래, 아무렴…… 그녀는 충실하겠지. 취향도 제각각이어서 그런 사람도 여럿이겠지. 하면 된다 ― 남들 으랏차차 즐거이 힘을 쓸 때, 게네들 영시기 영차 기꺼이 땀 흘릴…… 그래 그렇지, 그럼 그랬지…… 어떤 불성실한 작자는 면벽으로 수행하고 고적한 […]

Read More

압점

그녀가 사다준 조그만 고무 지압기 지하철에서 샀을까 아니면 길거리 좌판에서 샀을까 말랑말랑한 고무 재질에 뭉툭한 바늘이 가득하다 가끔씩 그녀를 생각하며 그걸 손에 꼭 쥐어본다 약간은 시원하고 약간은 아픈 느낌 때로는 그립고 때로는 만지고 싶은 느낌 손바닥을 펴면 압점마다 박혀 있는 수많은 그녀    

Read More

李賀의 마지막 말

목숨 壽 한 획 길고 짧음이 무슨 대수랴 奚囊해낭 속에 천년의 푸른 피 채웠음에 호기로움 도리어 심금 울리네 미처 쓰지 못한 사연들 뿔뿔이 흩어지고 玉樓옥루 높고 좁아 디딜 자리 없으니 먼발치로 그리는 것도 실없는 짓, 비루하게 살고 또 살아 허튼 주머니 털어버리는 것도 多幸이려니     +“상제께서 백옥루를 짓고 내게 記文을 쓰라 하신다.” 이하, A.D. […]

Read More

맹점

레몬타임, 로즈마리, 라벤더… 책상 위에 나란히 허브 화분 셋을 갖다 놓았던 날엔 라벤더 언덕의 꿈을 꾸었다 살짝 손을 갖다대기만 해도 풍겨오는 향기가 상큼하기도 하였다 물과 햇살 그 어디서 그런 향이 만들어지는지 참으로 신기한 마법이었다 박테리아 하나의 조직이 웬만한 중소도시에 맞먹는다던데 그럼 이것은 얼마나 대단한 역사인가 생각날 때마다 잎을 흔들며 초록빛 인생의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갈수록 […]

Read More

가시

옥상에있는그 녀를생각하다목에가시가걸리었다 언제였던지시간흘러가니바싹바싹목이탄다 그러나당장죽을일도아니고가슴쥐어뜯을일도아니다 조심스레침을삼키며기다리거나한땀한땀풀어헤쳐가는눈물 바늘이다담배연기를한껏깊이들이마시거나물도마셔보고 절식을하거나토할지경으로밥을먹어도본다 하지만아주아주많은시간이필요할것이다 가시를생각하다옥상에서있던그녀는내려갔다 내일도그렇게목구멍으로직통하는눈물 방울이다 한걸음디딜때마다그녀의발바닥이아프다 그녀가계단을내려온다그녀가계단을내려간다 자꾸날더러어둡다고한다 그가계단을올라온다그가계단을올라간다 그녀의목에걸리어있는 그옥상에있는그 가시다 생선가시하나목이막히어나는그자리가평생인양 벙어리처럼바보처럼 그리고표독스럽게   /2000. 4. 25. mister.yⓒmisterycase.com

Read More

내가 사랑하는 B

저들의 비행을 어찌 막을 것인가 지겹게도 모질게도 밤새도록 쏟아지네1)   A는 혈액형일 뿐이고 내 인생은 플랜 B도 만들 수 없는 형편이지만 지금까지의 삶에 있어 몇몇 B는 언제나 내 곁에 있어왔다. 예전처럼 ‘미쳐서’ 푹 빠진 것은 아니어도 쉬엄쉬엄 긴 길을 같이 간다고나 할까. 쉽사리 그 연결이 끊어지지는 않을 나의 B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 있다. 모든 것으로 […]

Read More

제목을 생각했으나 붙이지 아니함.

다만 홀로 허덕였을 뿐, 수없이 많은 말을 건넸으나 답은 없었다 땀과 숨이 뒤섞일 때 숨과 숨이 거칠게 맞닥뜨릴 때 오늘도 봉긋한 그 가슴에 오르다   /2006. 1. 28.     ++ 제목을 사용했다면 좀 썰렁했을 것이다. 영상이 상상을 제약하듯, 제목이 많은 것을 가두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붙이지 않은 제목 때문에 붙이지 않은 다른 제목이 붙었다. 마음대로 […]

Read More

다음 이 시간에……

<이작자 여인숙>에 썼던 마지막 글 2015. 9. 16. 13:38 (게시판 복원에 성공하여 ‘화이트룸’에 올렸던 마지막 글을 가져왔다)         더러는 햇빛처럼 더러는 빗물처럼 그 사이 사이 그대도 있다가 없다가 그랬다 …………………………………………. 놀았다 더운 물속에 쓰라린 상처처럼 바람 앞에 얼굴을 가리는 새처럼 결국은 아팠다 놀았으므로 지극히 쓰라렸다//허수경     최근에 있었던 몇몇 일은 일말의 […]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