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소재로 한 최근의 영화를 봤다. 아주 대충 봐서 영화에 관해선 뭐라 말도 하지 못하겠다. 알다시피 기억이란 굉장히 불확실하고 불분명하며, 뜻밖에도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또 과거에 대한 완벽한 기록이 있다고 한들 희미한 기억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심지어 까마득히 잊어버린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느낌은 남아 있음을 나는 안다.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이 기억의 바깥에 있는 것은 […]
(치정)살인의 추억
“치정살인”이란 단어는 내가 썼던 그 노래에 대한 가장 간략한 정의였다. 본인이 기억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오래도록 연결이 끊어진 채인 그가 플로라를 알게 된 것은 레코드판에 바늘을 올리던 내 손끝에서였다. 그런데 이 단어를 친구의 아이디로 들어간 고등학교 동창 ‘밴드’에서 보게 되리란 생각은 정말 못했다. (현재 내 폰에는 ‘밴드’도 ‘페이스북’도 없다. ‘카톡’을 쓸 일도 없다.) lily of the […]
새로 생긴 과일 가게
몹시도 들여다보고 싶었던 여인의 방 ― 예전에 ‘경화미용원’이 자리했던 아파트 위쪽길 초입의 편의점 옆에 과일가게 하나 새로 문을 열었다. 얼마 전에 문을 닫은 가게의 간판이 그대로 붙어 있어 이름도 없지만 길 앞에까지 진열대를 내어놓고 불을 환히 밝힌 채 젊은 부부가 장사를 한다. 새로 시작한 가게라서 그런지 소박한 진열대도 과일도 반질반질하게 보이고 앞길까지 부지런히 쓸어가며 그네들은 희망에 부풀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