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을 따라 흥얼거리다 문득 밤하늘을 바라 보았지 별 하나 찾기 힘든 그곳, 그리운 얼굴을 떠올리기는 어려운 일이었지 /창백한 푸른 점 어릴 적에 본 학원사의 <코스모스>는 우주에 대한 상상의 보고였다. 지름 10만 광년의 은하에 수많은 별이 모여 있는 도판을 보면서 무한에 관한 수많은 꿈을 꾸던 시절이었다. 교양서적이라면 교양서적일 뿐이겠지만 처음 […]
(치정)살인의 추억
“치정살인”이란 단어는 내가 썼던 그 노래에 대한 가장 간략한 정의였다. 본인이 기억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오래도록 연결이 끊어진 채인 그가 플로라를 알게 된 것은 레코드판에 바늘을 올리던 내 손끝에서였다. 그런데 이 단어를 친구의 아이디로 들어간 고등학교 동창 ‘밴드’에서 보게 되리란 생각은 정말 못했다. (현재 내 폰에는 ‘밴드’도 ‘페이스북’도 없다. ‘카톡’을 쓸 일도 없다.) lily of the […]
새로 생긴 과일 가게
몹시도 들여다보고 싶었던 여인의 방 ― 예전에 ‘경화미용원’이 자리했던 아파트 위쪽길 초입의 편의점 옆에 과일가게 하나 새로 문을 열었다. 얼마 전에 문을 닫은 가게의 간판이 그대로 붙어 있어 이름도 없지만 길 앞에까지 진열대를 내어놓고 불을 환히 밝힌 채 젊은 부부가 장사를 한다. 새로 시작한 가게라서 그런지 소박한 진열대도 과일도 반질반질하게 보이고 앞길까지 부지런히 쓸어가며 그네들은 희망에 부풀어 […]
활명수게맛살조리예그리고
생명의 신비, 그런 책에서 봤던 것인가 모르겠다. 어떤 풀벌레가 있었다. 그놈은 독이 없는데 독 있는 벌레와 거의 같은 무늬를 흉내내어 제 목숨을 보존하고자 했다. 뱀 가운데도 무늬만 독뱀을 흉내내는 비슷한 종류가 있었다. 어쩌면 게맛살도 비슷하고 예전엔 그냥 바나나 우유였던 바나나맛 우유도 그렇다. 또 어쩌면 소화제 치고는 너무도 거창한 이름을 지녔던 활명수나 이제는 유용성이 입증되지 않아 […]
ligado a você : 당신께 ◎
“진실이라 말 할 수도 없는 진실 같은 것, 소식 들은지도 오래입니다……” 처음 오신 당신께. 가끔 오시는 당신께. 이제는 오지 않는 당신께. 배경에 마음 같은 음악을 깔고 “당신께”라는 단어가 들어간 하찮은 글을 몇번 썼습니다. 끊어졌거나 이어져 있거나, 아니면 그 어떤 상태인지 알 길조차 없거나 스스로 망가뜨리곤 했던 그 어떤 연결에 대한 바램 같은 것이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