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란 브레고비치 때문이었다.
나이값 못하는 건달처럼 보이는 인간들이
요상하게 치장한 채 난장판으로 노래하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은.
그렇다고 펑크록을 하는 노장들도 아니고
나를 데려가세요 ㅡ “울릉도 트위스트”를 표절한 듯한(?)
한물간 스타일의 노래에 이토록 떠들썩하게 열을 낼 수 있는 것인지 우습지도 않았다.
하지만 “뻔하고 저질스런 매력”이라고 해야 할지,
이 얄궂고 싼티나는 모습 속에 이상하게 끌리는 구석이 있어
이런저런 노랠 찾아 들었다.
이름부터가 암호같은 러시아어에 막혔지만 이들의 노래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그리고 이 사람(들)의 노래는 참 각양각색이었다.
이상하게 쥐어짜는 목소리는 밥 딜런의 때로 거슬리는 비음을 연상케도 했고
집시풍에서 트위스트, 딕시랜드와 록 음악을 제멋대로 오간다.
“10,000km”도 거기 있었고 절망과 그리움과 후련함이 함께 있었다.
(이 노래는 대략……
호랑이, 아니 할머니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인지
할머니는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할머니 집엘 가면
럼주를 마시며 즐겁게 논다는 가사로 되어 있다.)
사흘 정도 홈피가 계속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어제는 그 절정인 듯, 거의 온종일 작동이 되지 않았다.
서버를 이용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유독 워드프레스만 먹통이었다.
현재 원인으로 추측되는 세가지는
1. 케이보드 게시판의 문제
2. 게시판 자료가 포함된 데이터베이스의 문제
3. 워드프레스 현재 버전의 문제(설치때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좀 이상했다)
4. 바이러스
다.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자 할 때 사이트 로딩이 극단적으로 느려진 것은 사실이어서
지금도 어떨지 몰라 게시판에 쓸 글을 포스트로 대신하고 있다.
1~3에서 문제가 있을 경우엔 그 해결까지 시간을 기약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바이러스일 경우가 오히려 제일 간단할 것이다.
(실제로 바이러스가 활동했는지는 모르지만 감염된 파일 몇몇이 있었다.)
장기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백업작업과 더불어 서버 하드디스크를 초기화시켜야 할지도 모르겠다.
계속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거나 ‘팩토리 리셋’을 해야 할 상황일 때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블로그를 ‘임시 케이스’로 쓸 생각이다.
+
현재는 어느 정도 안정된 것이 해결된 것으로 보이는데
내 추측이 맞다면
wp super cache라는 플러그인의 오류로 인하여
캐쉬 파일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서 로딩이 무한정 느려진 듯 싶다.
현재는 문제가 되었던 플러그인을 제거했고
여타의 플러그인 프로그램들도 많이 삭제하였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postcard에 비해 이름도 얼마나 분위기 있었던가 ㅡ 문자 메시지와 sns가 없던 옛 시절에는 엽서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걸로 응모도 했고 모임도 알렸고 노래도 신청했고 안부도 물었다. 누가 본다고 한들 그대 아니면 의미없노라던 그 나이브한 방식은 또 얼마나 의미있는 것이었던가. 편지나 엽서나 오고 가는 속도는 다를 바가 없었지만 엽서에는 난데없는 청춘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고 어쩐지 보다 명확하고 빠르게 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우표 붙여 보내야 하는 알록달록한 그림엽서 말고 관제엽서라는 것이 있었다. 군관민 합동작전의 시대, 등화관제의 시대, 신문과 tv에 덧칠되어진 관제라는 이름의 그림자는 지긋지긋하고 신물나는 것이었지만 엽서만은 우표도 붙일 필요 없는 관제가 단출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이제는 엽서라는 낭만적인 호칭에 합당한 체신을 지키고자 체신엽서로 이름을 바꾸었고 그 자리는 전혀 다른 모양새의 엽서들이 관제를 대신하여 사제가 관제를 생산하는 놀랍고도 멋진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거기 비하면 관제엽서는 장난이었고 비행기가 떨어지거나 말거나 본인이 무조건 제일순위였던 언론과 방송을 생각하노라면 방법론에 있어 그 옛날의 우격다짐은 순진하리만큼 저차원이었고 최악이었다. 오늘날의 최첨단 사제엽서도 응모를 하고 모임을 알리고 노래도 신청하고 안부도 묻는다. 하지만 눈에 불을 켜는 대신 폰에 불을 켜고 컴으로 불을 붙이면 아침 바람 찬바람에 철없이 울고가는 저 기러기 엽서 한 장 써 붙여서 가위 바위 보 하는 사이 어처구니없는 많은 거짓들이 사제폭탄처럼 터지기 시작한다. 그대 아니라 그 어느 누구라도 괜찮다며 지금도 여기저기, 온사방에서 폭죽처럼 즐거웁게 터지고 있다. 기구한 내 사연은 깨알같은 글씨로도 관제엽서를 이미 가득채웠으나 아무도 눈도 깜빡 하지 않는다.
“수고 많으십니다.” “큰 일거리가 생겼습니다.” 웃음으로 대답하는 경비아저씨는 아스팔트를 뒤덮은 꽃잎들을 향해 부지런히 비질을 하고 계신다. 한창이던 벚꽃이건만 연이틀 세찬 빗줄기를 만났으니 흙탕물까지 보태어 바닥에 널브러진 모양새가 참담하다. 연분홍빛 봄꿈을 전해주던 그 여린 꽃잎들은 하루아침에 쓸려나가야 할 쓰레기가 되었으니 떨어질 零에 떨어질 落, 말 그대로 零落이다. 하지만 우리가 ‘똑같은’이나 ‘떨어지지 않는’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영락없는’에서도 한자는 그대로 ‘零落’이다. 떨어지고 또 떨어졌는데 못하지 않고 변함이 없음은 가능한 무엇인가. 榮枯一炊(영고일취), 인생이 꽃피고 시드는 것은 한번 밥짓는 순간처럼 덧없고 부질없음이라 했으니 ‘영락이 없음’은 아무나 도달하지는 못할 경지다. 하지만 형상이 바뀌거나 사라졌어도 변함없는 무엇인가를 그린다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 ‘한번 밥짓는’ 시간만큼이라도 짚어보았으면 싶었다. 애초에는 첫 행을 ‘떨어질 零 떨어질 落’으로 했으나 ‘동음이의어’지만 결국은 ‘동음동의어’이기도 한 ‘꽃 榮 즐길 樂’으로 바꾸었다. 그럼 잠시나마 零落의 시간을 넘어 榮樂을 꿈꾸어……
깊은 밤 뜰 위에 나서
멀리 있는 애인을 생각하다가
나는 여러 억천만 년 사는 별을 보았다.
/김달진
한 두 해 전, 국내 모 자동차 그룹의 일부 차량의 전조등이 미국의 평가기관으로부터 좋지 못한 판정을 받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일부 유수한 메이커의 다른 차량들도 비슷한 판정을 받긴 했지만 이유가 생각과는 좀 달랐다. 그것은 “XX자동차 헤드라이트의 가장 큰 문제점은 너무 환한 빛을 내는 것”이라며 “자체 커브 어댑티브 헤드라이트 시스템은 일반 헤드라이트보다 우수한 성능을 내지만, 맞은편 운전자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요즘의 대부분 차량들은 너무 밝아서들 문제인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는 미등도 마찬가지여서 신호 대기시 뒤쪽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하곤 한다. 어떤 차는 주간 주행등이 거의 전조등 수준이어서 야간 주행시 그것만 켜도 제법 환했다.(그럼에도 터널 안에서 아예 조명을 켜지 않은 차들이 예전보다 더 많은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은 자동차 이야기가 아니다. 나 자신의 글쓰기에 관한 것이다. 한때 내 글은 발광하듯 하이빔을 켠 채 제멋대로 달리고자 기를 쓰던 자동차 같았다. 자동차나 운전에 관해서 경험도 지식도 없는 이가 여차하면 급제동을 했고 마그리뜨의 기억처럼 피흘리며 끝까지 달려서 부딪히기를 꿈꾸었다. “너랑 같이 누워서 그 짓을 해보고 싶어”라고 생각했을 때처럼.
지금이라고 그런 생각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조금은 달라졌다. 살짝 열린 문으로 들여다보이는 단출한 풍경… 그렇다고 그 한정된 이미지가 잊혀지지 않을 강렬함이나 전자가 달아나버린 중성자성처럼 극단적인 압축의 형태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저기 아득한 곳에서 차량 하나가 부드럽게 가속하며 당신께로 가고 있다…… 보일 듯 말 듯한 희미한 별 하나가 오래도록 그 자리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내 글이 그랬으면 한다. 못쓰는 이에겐 꿈일 뿐이겠지만, 나 자신도.
재개발도 쉽지 않은 낡은 아파트라 나무들도 비슷하니 오래되었다. 나름 자랑거리인 벚꽃나무는 족히 40년은 더 되었을 것이다. 아파트 중앙길 양편으로 마주 서 있는 벚꽃나무들은 몇해전부터 거의가 서로 이어져 있다. 관리사무소에서는 봄소식 들리기 전에 한동안 가지치기 작업을 했다. 벚꽃은 그다지 손대지 않았으나 은행이나 목련은 처참하리만큼 많이들 잘려나갔다. 와중에도 목련은 꽃봉오리가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나중이야 어떻든 한낮의 어둠을 밝히는 듯한 하얀 꽃불이 마냥 반가웠다. 모질게도 가지치기를 하고나니 봄이 왔나 보다. 자른 것도 잘려나간 것도 없는 내게 자른 것과 잘려나간 것 뿐인 내게 봄은 곁불처럼 왔나 보다. 백리향인지 천리향인지 이름도 헷갈리지만 반가운 그 향기가 지척임에 거리는 상관이 없고 늘 그런 마음이었으면 싶었다. 하지만 곁봄인지 옅봄인지 체감이 부족한 나는 아직 내복을 입고 있다.
어떤 학생이 도움이 필요해 찾아왔다. 간단한 문제는 아니어서 한참을 시도한 끝에 겨우 해결은 할 수 있었다. 사무실서 학생이 사가지고 온 커피를 마시고 나니 마칠 때가 되어 같이 나왔다. 바로 앞의 길에서 그냥 가기 뭣해서 동네를 한바퀴 돌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버스 태워주고 왔다. 또래 내지 동생들과 댄스팀을 하면서 그쪽 방면으로 일을 갖고 싶어한다고 들었다. 조금 차가웠던 저녁 공기가 상쾌하게만 느껴졌고 내가 조용하고 편안한 사람이라는 말에는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알았던 학생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나는 말을 잘 놓을 수가 없었다.
그곳이 본래부터 바다였는지는 알 수 없는데 곧 망망대해가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물바다 너머에는 한번 보면 넋을 잃지 않을 수 없는 아름답고도 가보고 싶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누가 이름 붙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언젠가 보고 겪은 듯한 그 신비롭고도 풋풋한 풍경을 가리켜 ‘치름’이라고 했다. 육지로 돌아가야 할텐데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나는 그 풍경을 부지런히 따라갔다. 치름이라는 이름을 지녔던 그 고유명사의 앞자리에는 숨겨진 목적어가 있다는 것 늦게나마 알 수 있었고, 그 이름을 내게 알려준 누군가는 치름을 바라보며 이렇게 읊조렸다. “신은 아름다움으로 어리석은 자를 멸하고 또 구할지니……”
그리고 치름은 누구나 알고 있고 본 적 있는 봄꿈의 이름이었다. 어쩌면 그 댓가를 치룬 적 없는 3할쯤의 현실의 이름일지도.
그들이 들려줬던 어떤 노래 하나만으로도 마음에서 지워질 수 없는 incredible string band. 초기의 앨범들을 특히 좋아하지만 잊을 수 없는 노래 하나가 여기 또 있다. 1970년의 라이브 앨범에 수록된 willow pattern이 바로 그 곡으로 풋풋하고 상큼한 느낌 때문인지 해마다 봄이 되면 생각나는 노래이기도 하다.
이 노래의 유래는 단 하나인데 결과물은 나름 다국적으로 되어 있다. 라이브에서 밴드는 이 곡을 중국풍의 노래로 소개하고 있지만 원곡은 중국이 아닌 한국의 경기도 지방에서 불리우던 세마치 장단으로 된, 모두가 알고 있는 우리 민요 <도라지 타령>이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제목과 가사는 중국 왕실에서의 금지된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고 incredible string band가 부른 것이다. “by 로빈 윌리엄슨”이라고만 되어 있어 (가사는 그가 쓴 것으로 추측되지만) 곡에 대한 명확한 정보는 없다.
하지만 Willow pattern의 가사는 도라지 타령과는 달리 공주와 평민(?)의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밀정에게 발각되어 참혹한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한쌍의 비둘기가 되어 함께 하리라는 이야기다.(도라지 타령의 경우는 이와 달리 천안 삼거리나 맹꽁이 타령과 같은 일부 민요/가요와 비슷한 상징도 포함하고 있는 거 같다.)
인트로는 자신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덧붙였고 전반적으로 중국풍이 강하지만 ‘감초 리키’가 가사 속의 공주가 되어 특유의 고음으로 ‘도라지 타령’을 노래한다. 그들의 결혼을 약속하는 대목은 두 사람이 함께 즐거이 노래하고 왕이 분노하는 대목은 음악극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데 예의 ‘호이호이야’는 억양을 바꿔가며 중국말(?)을 대신하는 분위기이다.
포폴 부흐 앨범의 신비로운 코러스가 윤이상의 딸이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우리의 민요가 불려졌다는 것도 웁스아트라고 할만큼 특이한 케이스인 듯 싶다. 월드뮤직을 다루는 푸투마요나 세계 온갖 뮤지션들이 참여하는 플레잉 포 체인지에서 우리나라의 노래나 가수, 연주자를 보기 힘든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에헤요’가 ‘호이호이야’로 바뀌었고 “한두 잎만 따도 다랭이가 철철 넘는 민요의 무대”+는 중국으로 넘어갔고 이들은 라이브의 서두에 중국풍의 영국 노래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그 곡조는 하나도 틀리지 않는 도라지 타령이다. 표절이든 오해든 이들에게 도라지 타령을 들려준 사람은 누구이고 또 어떤 경로였을지……
윌로우 패턴의 원형은 중국을 무대로 해서 만들어진 영국 이야기인 듯 싶고 그것은 또 도자기(청화백자)의 문양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의 도라지 타령이 ‘본 차이나'(도 아닌) ‘도자기 타령'(?)이 되어버린 것이 아쉽지만 내가 좋아하는 포크 그룹의 연주로 우리나라 민요를 듣는 느낌은 (비극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이 전해주는 동양적인 봄날의 분위기처럼 신기하고 반가운 느낌이었다. 하나의 문화가 몇 갈래의 길을 거쳐 다른 세계에 전해질 때 본래의 텍스트는 어떻게 남고 어떤 방식으로 변화를 겪는지에 관해 이 노래를 들으며 상상해보는 것도 나름 흥미로운 일이다.
오랜만에 이 노래 들으니 다시금 크리스티나 리커러스 맥케니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내가 꼭 쓰고 싶은 글(에세이 형식의 단편) 가운데 하나는 그녀에 관한 것이다. 그들의 첫 번째 노래처럼 메이비 썸데이, 언젠가 내게 올 것을 믿으며. 하지만 패스트볼의 토니 스캘조처럼 또는 그것을 시로 풀어낸 이창기처럼 나름의 방식으로 그녀를 존재하게 할 수 없다면 마음 속에만 있을 것이다.
The sun in the pale silence
Through the soft yellow mist
A gentle sighing
My love lies alone in guarded palace
Hoi-hoi-ya
Hoi-hoi-ya
Hoi-hoi-ya
Ho!
Drifting in moonlight
I wait for soft step I know through swaying grasses
The bird will sing so sweet
The cage is broken
Hoi-hoi-ya
Hoi-hoi-ya
Hoi-hoi-ya
Ho!
My skirt is long and the pink flowers tall
Oh how I love you, love you best of all
How we shall dance and sing of the day
You’re so much stronger than twice what you say
Her father the Emperor has denied their right to marry
Hoi-ya-nah!
The lovers seek to escape by their secret way over the willow bridge
Hoi-yo, hoi-yo?
A spy has betrayed them, they are pursued by the palace guard
Hoi-ya!
Before their cruel spears can pierce their innocent flesh
We’ll fly away like doves in the sky
Higher and higher, ever so high
We’ll fly away like doves in the blue
Never they’ll sever a love that is true
그들이 들려줬던 어떤 노래 하나만으로도 마음에서 지워질 수 없는 incredible string band. 초기의 앨범들을 특히 좋아하지만 잊을 수 없는 노래 하나가 여기 또 있다. 1970년의 라이브 앨범에 수록된 willow pattern이 바로 그 곡으로 풋풋하고 상큼한 느낌 때문인지 해마다 봄이 되면 생각나는 노래이기도 하다.
이 노래의 유래는 단 하나인데 결과물은 나름 다국적으로 되어 있다. 라이브에서 밴드는 이 곡을 중국풍의 노래로 소개하고 있지만 원곡은 중국이 아닌 한국의 경기도 지방에서 불리우던 세마치 장단으로 된, 모두가 알고 있는 우리 민요 <도라지 타령>이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제목과 가사는 중국 왕실에서의 금지된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고 incredible string band가 부른 것이다. “by 로빈 윌리엄슨”이라고만 되어 있어 (가사는 그가 쓴 것으로 추측되지만) 곡에 대한 명확한 정보는 없다.
하지만 willow pattern의 가사는 도라지 타령과는 달리 공주와 평민(?)의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밀정에게 발각되어 참혹한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한쌍의 비둘기가 되어 함께 하리라는 이야기다.(도라지 타령의 경우는 이와 달리 천안 삼거리나 맹꽁이 타령과 같은 일부 민요/가요와 비슷한 상징도 포함하고 있는 거 같다.)
인트로는 자신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덧붙였고 전반적으로 중국풍이 강하지만 ‘감초 리키’가 가사 속의 공주가 되어 특유의 고음으로 ‘도라지 타령’을 노래한다. 그들의 결혼을 약속하는 대목은 두 사람이 함께 즐거이 노래하고 왕이 분노하는 대목은 음악극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데 예의 ‘호이호이야’는 억양을 바꿔가며 중국말(?)을 대신하는 분위기이다.
포폴 부흐 앨범의 신비로운 코러스가 윤이상의 딸이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우리의 민요가 불려졌다는 것도 웁스아트라고 할만큼 특이한 케이스인 듯 싶다. 월드뮤직을 다루는 푸투마요나 세계 온갖 뮤지션들이 참여하는 플레잉 포 체인지에서 우리나라의 노래나 가수, 연주자를 보기 힘든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에헤요’가 ‘호이호이야’로 바뀌었고 “한두 잎만 따도 다랭이가 철철 넘는 민요의 무대”+는 중국으로 넘어갔고 이들은 라이브의 서두에 중국풍의 영국 노래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그 곡조는 하나도 틀리지 않는 도라지 타령이다. 표절이든 오해든 이들에게 도라지 타령을 들려준 사람은 누구이고 또 어떤 경로였을지……
윌로우 패턴의 원형은 중국을 무대로 해서 만들어진 영국 이야기인 듯 싶고 그것은 또 도자기(청화백자)의 문양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의 도라지 타령이 ‘본 차이나'(도 아닌) ‘도자기 타령'(?)이 되어버린 것이 아쉽지만 내가 좋아하는 포크 그룹의 연주로 우리나라 민요를 듣는 느낌은 (비극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이 전해주는 동양적인 봄날의 분위기처럼 신기하고 반가운 느낌이었다. 하나의 문화가 몇 갈래의 길을 거쳐 다른 세계에 전해질 때 본래의 텍스트는 어떻게 남고 어떤 방식으로 변화를 겪는지에 관해 이 노래를 들으며 상상해보는 것도 나름 흥미로운 일이다.
오랜만에 이 노래 들으니 다시금 크리스티나 리커러스 맥케니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내가 꼭 쓰고 싶은 글(에세이 형식의 단편) 가운데 하나는 그녀에 관한 것이다. 그들의 첫 번째 노래처럼 메이비 썸데이, 언젠가 내게 올 것을 믿으며. 하지만 패스트볼의 토니 스캘조처럼 또는 그것을 시로 풀어낸 이창기처럼 나름의 방식으로 그녀를 존재하게 할 수 없다면 마음 속에만 있을 것이다. 이들이 ‘도라지 타령’을 라이브로 노래한 것은 1971년 3월 18일이었다.
당신은 흘러갔고 나는 아직 그 자리,
부족하고 텅 빈 그 자리를 물로 때웁니다.
/2009. 11. 14.
연로하신 모친이 여전히 살림을 하시니 그거라도 도와야겠다 싶어 잠깐씩 부엌을 들락거립니다. 딱히 할 일이 없으니 제일 쉬운 것은 역시 설거지, 여기저기 오가며 가끔은 삼시세끼 설거지를 하기도 합니다. 그건 운명이 아니지만 운명이기도 합니다.
설거지 하면서 지난 날 돌아보면 수세미에 힘이 들어가 잘도 박박 문질러댑니다. 흥건한 기름때나 곤란하게 냄비에 눌어붙은 흔적이나 결국은 깨끗이 벗겨냅니다. 세상에 못난이는 모든 것이 운명입니다. 세상 그 누군들 못나게 태어나지야 않았겠지만 스스로 못나게 자랐고 설거지는 내 운명입니다. 무엇이든 제대로 요리하지 못하는 이의 운명입니다.
깔끔히 잘 정리하지는 못해도 그럴 때면 나는 오류투성이에 전기만 잘도 잡아먹는 식기세척기입니다. 하지만 지난날의 온갖 잔해와 오점들을 향해 쉼 없이 돌아가야 합니다. 그릇이 산더미처럼 쌓여도 그다지 난감하지는 않습니다.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니까요.
하지만 요리하는 꿈을 아예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다. 가끔씩은 물어도 보고 수첩도 하나 마련할 참입니다. 예쁘게 계란말이도 만들어보고 싶고, 라면만 보글보글 지겹게 끓이지 말고 된장찌개에 미역국도 해볼 겁니다. 카레도 만들고 나물 쯤은 무칠 수 있어야겠지요. 넘쳐나는 부족함에 열성인 꼭 그만큼 열성이 필요한 운명입니다.
씻지 못할 오점들을 향한 한때의 설거지는 끝이 났지만 또 다른 한때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건 살아 있음의 운명입니다. 부끄러움은 그 운명 속에 숨죽이고 있을 뿐, 설거지가 내 운명이라고 해도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나는 흘러갔고 당신은 아직 그 자리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