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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리스, 노래

1997년 혹은 1998년 흐릿한 신문 칼럼에서 영화 속 장면 하나를 처음 봤을 때 만큼이나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2002년의 솔라리스는 감상적이고 공허하였다 하염없이 시간은 흐르고 스타니스와프 렘은 많이 달라진 얼굴로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솔라리스를 들은 것도 본 것도 만난 것도 모두 태고의 흐릿한 이야기 언제나처럼 오래된 책꽂이의 어둑한 책과 바다와 별을 나는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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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레니따 보빈사나

유래가 무엇인지는 짐작할 길 없어도 내 마음 깊숙한 곳엔 언제나 이런 류의 곡조가 피처럼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안다. 아마르나 시대의 이집트에 깊이 매혹되었고 치첸이차의 엘 카스티요나 엘 카라콜은 내 오랜 꿈과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소소한 것에서 불멸의 작품까지 세상 많은 것들이 나를 솔깃하게 했지만 내 마음은 페루 남녘의 황량한 평원을 헤매이는 나그네이거나 밀림을 떠도는 화전민처럼 어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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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거기 온갖 현학적인 추론과 해설을 갖다붙여봤자 그건 본질을 흐리고 생각을 어렵게 만드는 지방덩어리일 뿐이다. 무슨 잘못을 저잘렀는지도 모른 채 당해버린 K의 소송, 그게 무엇인지 자명하니 그는 ‘안개화법’으로 흐려놓았다. 소송에서 이길 방법은 없으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싸울 수는 있다. 삶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알지 못한 채 당해버린 소송이다. Entwurf는 그럴 듯한 허사일지도 모를 일, 중국 마술상자처럼 열어나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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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

아흔 아홉 구비 깎아 강릉 가는 새로 낸 길 일곱 개 터널 뚫은 휴게소 화장실 정원 구석에서 슬픈 듯 기쁜 듯 그렇게 만났다 /남천, 시냇물   창녕 집에 작게 프린트한 시 두편이 있다. 하나는 구절초, 그리고 다른 하나는 괴이한 제목에 몇줄 되지 않는 내 시다. 집에서 볼 적에 마당 왼편에는 구절초가 여기저기 피어 있고 햇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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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스완송 : Hurt

I wear this crown of thorns Upon my liar’s chair Full of broken thoughts I cannot repair /Hurt   십수년 전의 어느 날, 유튜브에서 보았던 자니 캐시의 노래는 충격이었다. 모든 사람이 가는 길에 관한 그의 노래는 말할 수 없이 인상적이어서 나는 짧은 기록(Hurt – Heart of OLD)이라도 꼭 남겨야 했다. 이 곡은 Nine Inch Nails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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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지난 10년간의 음악듣기+

오래도록 좋아했던 케일이 세상을 떠났고, 잊지 못할 자장가를 내게 알려준 리언 레드본도 마찬가지다. 타운즈 반 잰트의 경우, 내가 그의 음악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을 때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 많은 늙어버린 가수들의 모습이 저물어가는 시대를 느끼게도 한다. 오래도록 좋아해온 밴드와 가수들에 대해선 여전하다. 비틀즈, 밥 딜런, 핑크 플로이드에서 로이 하퍼, 도노반, 크리스티 무어에 브라질, 중남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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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공동운명

우리는 승리를 얻을 수도 있고 재앙을 겪을 수도 있지만, 그 두 가지 허깨비를 똑같이 취급해야 해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난 금요일이었다. 모처럼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 이 친구와의 식사에 있어 나는 선택권을 전혀 갖지도 않고 사용하지도 않는다. 그가 음식점을 잘 아는데다 잘 아는 그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그랬다. 어제는 초량의 중국집과 송도의 어떤 식당을 내게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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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ay the music died

1980년 12월, 존 레넌이 세상을 떠났을 때의 Times 커버를 아직 기억한다. 거기에는 그의 초상화와 함께 “When the music died”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 표현은 예전에도 여러번 붙은 적이 있다. 가사만 봐도 그렇다. 버디 할리와 리치 발렌스가 죽은 1959년의 비행기 사고를 “The day the music died”라고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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