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사로운 봄볕 아래 가늠키 힘든 그늘 자라고 있어 내 차라리 밤을 그렸네 점멸하는 별처럼 수많은 이름을 지닌 바램 가운데 단 하나, 출구를 향하여 빛의 기운이 몰리어 갈 때 마냥 깊어지고 시간과 우주의 고독한 종말을 향해 속절없이 팽창하던 밤, 그리고 밤의 어떤 것 2016.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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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사 밝혀지는 수요일의 진실
수요일과 관련하여 긴 세월에 걸쳐 소소한 글을 몇번 썼었고 몇해 전엔 거의 완결의 의미로 <이제사 밝혀지는 수요일의 진실>을 썼었다. 그런데 ‘웬즈데이 차일드’에 관한 또 한번의 반전이 있어서 원래 글을 그대로 옮기고 끝에 사족을 달았다. ‘Wednesday’s child is a child of woe. Wednesday’s child cries alone, I know. When you smiled, just for me […]
When Doves Cry
어릴 적 팝송이란 걸 처음 들었을 때 내가 갖고 있던(사실은 내것도 아니었던) 단 하나의 카세트 테이프엔 ‘팔로마 블랑카’란 노래가 있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그 가사를 보며 즐거이 따라 불렀다. 하지만 봄날의 작은 새처럼 조잘대던 새하얀 비둘기는 너무 쉽게 날아가버렸고(88올림픽 성화대에서 한순간 사라져버린 비둘기들처럼!) When doves cry의 기타가 잠시 마음을 흔들고 <더 월>의 한 장면처럼 […]
장사익 모친의 한수
장사익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그리 열심히 노랠 들은 것은 아니지만 이분 이야기 나오면 빠짐없이 보는 편이다. 나 같은 이가 배울 점이 많아서 더 그렇다. 이분 주름살에 대한 이야기도 가끔 나오던데 노래하는 모습은 어쩐지 까이따노 벨로주와 비슷한 뭔가가 있는 느낌이다. 주름살도 그렇고. 어떤 다른 길을 갔다고 하더라도 결국 노래를 하게 될 사람들이었다고나 할까. 그의 모친께서 아들 […]
1999-2009, 변함없이
아주 아주 오래전… 어느 시인 흉내를 내며 시 몇편 끄적인 적이 있다. 그때 쓴 것 가운데 일년 전에 보았던 바다에 관한 글이 있었다. ‘변함 없음’에 관한 한켠의 부러움과 한켠의 탄식이었다. 그리고 여기 이 노래는 1년 아닌 10년의 이야기이다. 노래 속의 메시지가 사회적인 것인지 또는 개인적인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개인적인 의미로 돌아다 본다. 1999년의 겨울을 […]
거품의 바다 Mare Spumans
잠시 기다려주오 위난의 바다 속 섬 같은 그곳 나 이 모래성 허물고 그대 마음대로 나고 들 세상 다시 지으리 그리고 등 돌린 채 그 자리서 잊혀져버린 세계 끝내 담을 수 없었던 未知 바다는 천길만길 물러나 자취를 감추었고 누군가 그녀에게 돌아오지 못할 이름 주었네 2015. 10. 13.
É Preciso Perdoar
알다시피 보싸노바의 트로이카 가운데 그 리듬을 만들어낸 사람은 조앙 질베르뚜였다. 그럼에도 ㅡ 몇몇 상큼한 노래가 없지 않지만 ㅡ 그의 초기 곡들은 지나치게 매끄럽고 가벼워서 그다지 끌리지가 않았다. 보싸노바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게츠/질베르뚜 콤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어떤 부분에서 그는 과대평가된 것 같고 또 어떤 면에서 그는 과소평가된 가수이자 연주자란 생각이 든다. 그러한 양면성은 게츠/질베르뚜의 곡들에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