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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벅머리 이발소

너의 관자놀이에 무슨 일이 있었니 머리칼아 너는 무엇을 가릴 수 있니 당산나무 지나서 골목 하나 건너고 몇 걸음만 옮기면 파랑 빨강 이발소 표지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멈추어 있었어 흠집 투성이 자개무늬 둘러진 거울 앞에 앉자 나는 정물이 되어 있었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이발사는 미련없이 가위질을 시작하였고 머리칼이 듬성듬성 잘려 나갔어 뚜뚜뚜 뚜, 재빠른 가위질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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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vegetablewife

오 한봉지 씨를 뿌렸네 놀라운 그녀를 온실에 심어둔 거야 그러면 싹이 나고 줄기가 생겨 잘도 자라지 아름다운 여인이 되지 내가 원했던 것은 식물 같은 여자 아름답고 착하고 순종하는 식물 같은 여자 원할 땐 뭐든 다 들어주는 동물 같은 여자 그녀는 결혼을 위해 식물이 되지 그녀는 아기를 위해 식물이 되지 그녀는 버림받지 않기 위해 식물이 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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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비가……

어디에 소용있는 그리움일까 비 쏟아지는 창가 화분이 시들하다   연일 지독하게 햇살만 내리쬐다 모처럼 후련하게 비가 쏟아졌다. 금세 그치는가 싶더니 천둥까지 보태어가며 오후 내내 오락가락이다. 내가 얼마나 바보였던지 알려준다며 콩닥대던 빗방울의 리듬이 사라진 자리, 비의 노래들을 생각하며 한참을 보냈다. 사이먼 버터플라이의 비는 가볍게 흩날리고 비와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마리 라포레는 조금 부담스럽게 질척인다. 그래서인지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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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웃음소리뿐

나의 마음 속에 항상 들려오는 그대와 같이 걷던 그 길가의 빗소리+   는 아니다. 소리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녀를 생각하면 조금 기분이 좋아진다. 1984년 채링턴 문방구의 다락방에서 윈스턴 스미스와 쥴리아가 마셨던 ‘진짜 커피’ 같은 느낌 ㅡ 예전에 좋아했던 어떤 원두커피의 조합이 생각난다. ‘마일스톤’이라는 회사의 제품이었는데 ‘아이리쉬 크림’에 ‘프렌치 바닐라’를 살짝 섞어 연하게 커피를 내리면 ‘아이리쉬’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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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ta ao Tom / Carta do Mister… y

아직 히우에서는 올림픽이 진행중이다. 소식이야 매일같이 듣지만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음악이 있는 나라의 제일 큰 도시에서 열렸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큰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그런데 오늘에사 히우 올림픽의 마스코트를 보게 되었다.  이름이 비니시우스였다. 비니시우스라면 나는 단 한 사람을 깊이 알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비니시우스의 곁에는 또다른 마스코트도 하나 있었다. 장애인 올림픽을 위한 것인데 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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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 곳 없는 이는 갈 곳도 없이

더위만이 절정을 향해 달리고 있는 오전의 한산한 거리, 겨우 햇빛 가릴 정도의 평상에 늘상 술 드시는 아저씨가 어김없이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평소 배경처럼 앉아 있던 주인 아저씨도 쌀집 할머니도 잠시 자리를 비웠는지 그의 곁엔 행인인 듯한 아주머니가 등을 돌린 채 담배를 피우며 신세타령을 하고 있다. 남편도 없는데 딸이 섭섭하고 빌어먹을 담배값은 너무 비싸다. 숨막히는 열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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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기적

금강경에 관한 어느 책에서 승조 스님의 일화를 보았다. 환속하여 재상이 되기를 바라는 황제의 요청을 거부한 까닭에 죽음을 당하게 된 그는 마지막 칠일 동안 팔만대장경의 핵심을 궤뚫은 <보장론>을 저술했다고 한다. 스님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보르헤스를 생각나게 했다. <허구들>에 실린 단편  ‘비밀의 기적’이 그랬다. 사형을 기다리는 8시 44분에서 9시 사이, 그리고 격발의 순간에서부터 총알이 자신을 뚫고 지나가기까지의 찰나를 1년의 시간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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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한 스핑크스를 위한 타이틀 곡

: 토니 스캘조 曲, 이창기 詞   The Way / Fastball   ……서른세살의 여름, 그는 신문에 난 한 노부부의 실종 기사를 읽었다. 텍사스에 사는 릴라와 레이먼드 하워드 부부는 1997년 6월, 가까운 템플 시에서 열리는 개척자의 날 축제에 가려고 차를 몰았다. 그러나 이 노부부는 2주일이 지나 목적지로부터 북동쪽으로 수백 마일 떨어진 아칸소 주의 핫스프링스 국립공원 산기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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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드 미드나잇

모든 것이 다 피곤해, 음악만 빼고. ㅡ 데일 터너, 라운드 미드나잇   저기까지 걸어 가려면 좀 더 긴 밤이 필요해 이 답 없는 이야기가 어찌 풀릴 것인지 궁금해 하던 사이 그들은 조금 나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 모든 이를 위한 두 사람만의 붉은 방은 감은 눈을 파고 들어올 만큼이었고 액자 속의 트럼펫은 저 홀로 퍼덕대다 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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