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엔가 바빌론으로 가는 길목에 덩그러니 문 하나가 생겼다. 하나 둘 사람들은 점점 그 문을 통해 바빌론으로 들어가길 좋아했다. 이런저런 구경거리도 있고 목적지에 아주 조금 더 빨리 갈 수도 있었다. 문앞에 가게도 차리고 좌판도 차리고 살림도 차렸다. 조금 돌아가면 되는데 언제부터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문으로만 들어가길 좋아했다. 오가는 이 모두가 비슷한 장사꾼들을 봤고 같은 소식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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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petite fille de la mer
어디메, 막 피는 접시꽃 새하얀 매디마다 감빛 돛을 올려라 오늘의 아픔 아픔의 먼 바다에/박용래 아마도 내가 열일곱, 열여덟 때였을 것이다. 늦은 밤 라디오에서 해상 일기예보를 전할 때 이 곡이 나왔다. “이즈하라, 소나기 / 눈.” 나는 방에 앉은 채 어딘지 모를 먼 바다를 떠도는 것 같았고 이국의 낯선 지명이 겨울 바다 너머로 따스하게 […]
peace of……
내게 워터보이즈란 재미없는 이름을 알게 해준 첫번째 노래였다. 인트로는 조금 식상한 느낌이었지만 디자이어 앨범을 연상케 하는 집시풍의 바이올린에 마이크 스콧이 길게 길게 이어가며 노래하는 섬의 이름은 알지 못할 섬의 역사와 그 속에 얽혀있을 숱한 사연인양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을 여운을 내게 남겼다. 내 마음에 무엇이 맺혀 풍파를 잠들게 하고 싶은 것인지 가끔은 아이오나를 내 이름처럼 기도처럼 […]
잘못 빌린 시집 外
프로스트 시집을 빌려 오려 했는데 알고보니 ‘미국 대표시선’으로 지은이는 ‘프로스트 外…’였습니다. 초겨울의 공원 벤치에서 잠시 책을 펼쳤는데 포우가 나와서 금세 알 수 있었습니다. 늘 列의 外인 사람이다 보니 外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나 봅니다. 하지만 좀 더 읽어보니 순간의 실망보다는 처음 보는 이름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월러스 스티븐즈는 선시 같은 느낌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에즈라 파운드의 […]
subconscious-lee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내가 궁금해하는 기억 속의 많은 것들을 지난 수십년간 pc통신/인터넷/모바일폰을 통해 찾아내었다. 무척 반가운 것들도 꽤 있었지만 이들의 복원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말은 여기 합당치 않겠지만, 알지 못함과 찾을 수 없음이 때로는 더 많은 것들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전 오래 전에 봤던 어떤 영화의 장면이 문득 […]
채워지지 않는 허기 : 고완형의 이빨
고완 형은 날마다 술을 먹는다. 고완 형의 이빨은 동훈 형보다도 더 나쁘다. 아직도 창창한 청춘일 뿐이었는데 그의 앞니가 몇이나 남아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무엇이 험한 그 모습을 부끄럽지 않게 만들었는지 부끄러움보다 더한 무엇이 그를 당당하게 만들었는지 망가진 모습 그대로 썬글라스를 끼고 술마시며 술주정처럼 노래를 한다. 무엇이 포크 음악이냐고 물을 필요도 없고 어떤 것이 펑크인지 애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