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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생긴 과일 가게

몹시도 들여다보고 싶었던 여인의 방 ― 예전에 ‘경화미용원’이 자리했던 아파트 위쪽길 초입의 편의점 옆에 과일가게 하나 새로 문을 열었다.

얼마 전에 문을 닫은 가게의 간판이 그대로 붙어 있어 이름도 없지만 길 앞에까지 진열대를 내어놓고 불을 환히 밝힌 채 젊은 부부가 장사를 한다. 새로 시작한 가게라서 그런지 소박한 진열대도 과일도 반질반질하게 보이고 앞길까지 부지런히 쓸어가며 그네들은 희망에 부풀어 있다. 곧 대목이니 좀 더 많은 과일들이 상자로 쌓일 것이고 또 팔려나갈 것이다.

하지만 아파트 가운데에 있는 좀 오래된 과일가게 주인은 마음이 조금 복잡할 것이다. 매일같이 오는 야채트럭에서 과일을 파는 것만 해도 그런데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은 동네에 과일가게 하나 더 생겼으니 아래위로 막힌 셈이다.

새로 생긴 과일가게의 가로길 끝 부식가게도 그렇다. 대파와 무 상추에다 과일 조금 갖다놓고 팔고 있고 겨울엔 어묵이며 떡볶이를 만들어 파는데 과일가게는 또 생겼고 맞은편에는 분식점이 열리려는 찰나다. 아주 가끔 옥수수와 어묵을 샀던 나는 매일 그 길 오가며 인사를 하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눈 마주치는 것도 힘들게 느껴진다.

하지만 개업을 준비 중이던 자그마한 분식점은 간판 붙인지도 몇 주 된 것 같은데 무슨 까닭인지 여태 문을 열지 않고 있다. 아무도 알지 못할 흐릿한 창문 너머로 한번도 사용한 적 없는 것 같은 조리도구들이 즐비하고 종이컵과 라면이 후덥지근한 적막 속에 한가득 쌓여 있다. 누군가의 희망도 그렇고 누군가의 절망도 비슷하다.

 

/2017. 9. 18. 화, 풀리.

활명수게맛살조리예그리고

생명의 신비, 그런 책에서 봤던 것인가 모르겠다. 어떤 풀벌레가 있었다. 그놈은 독이 없는데 독 있는 벌레와 거의 같은 무늬를 흉내내어 제 목숨을 보존하고자 했다. 뱀 가운데도 무늬만 독뱀을 흉내내는 비슷한 종류가 있었다. 어쩌면 게맛살도 비슷하고 예전엔 그냥 바나나 우유였던 바나나맛 우유도 그렇다. 또 어쩌면 소화제 치고는 너무도 거창한 이름을 지녔던 활명수나 이제는 유용성이 입증되지 않아 추억마저 뭉개버린 채 시판 금지 조치가 내려진 원기소도 그렇다. 개뿔…… 커다란 동물의 눈처럼 보이는 나비 날개의 문양에서 라면 포장지의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보이는 조리예까지 모두를 뒤섞어 놓은 듯한 뭔가가 동종 내지 아류들을 생각하며 잠시 끄적여보았는데 독이랍시고 있다 한들 제 속으로만 파고들 뿐, 끝내 날개 갖지 못할 어이없는 생명의 미스터리다.

 

/2017. 9. 8.

ligado a você : 당신께 ◎

“진실이라 말 할 수도 없는 진실 같은 것,
소식 들은지도 오래입니다……”

 

처음 오신 당신께.
가끔 오시는 당신께.
이제는 오지 않는 당신께.

 

배경에 마음 같은 음악을 깔고 “당신께”라는 단어가 들어간 하찮은 글을 몇번 썼습니다.
끊어졌거나 이어져 있거나, 아니면 그 어떤 상태인지 알 길조차 없거나
스스로 망가뜨리곤 했던 그 어떤 연결에 대한 바램 같은 것이었지요.

 

비슷한 바램이었을까요.
아르날두 안뚜니스는 하늘, 땅, 공기, 소리에서 연결을 느낀다고 노래합니다.
같은 세계에서 더불어 호흡하며 하늘을 바라보며 같은 소리(노래)를 들으며
당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연결이란 그런 것임을 누구나 알고 믿고 느낀 순간들이 누구에게나 있었겠지요.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의 첫 페이지에 썼던 앤 드리앤에 대한 헌정처럼요.+

 

하지만 때로는 그 무엇으로도 이어지지 못할 순간이 있고
그 단절의 시간은 연결에 비하면 영원에 가까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하라에서 과나바라 만에 이르기까지 어디에 있든 ligado a você,
연결이란 그런 것입니다.
if we never meet again this side of heaven ㅡ
이어진 것 하나 없음에도 그렇게 노래하게 하는 것입니다./srs.

 

 

+
앤 드리앤에게.
광대한 우주, 그리고 무한한 시간.
이 속에서 같은 행성, 같은 시대를
앤과 함께 살아 가는 것을 기뻐하면서.

 

+
나는 가끔 닉 케이브와 아르날두 안뚜니스를 비슷한 선상에서 듣곤 하는데
심정적으로는 안뚜니스를 조금 더 가깝게 느끼곤 합니다.
혼자 훌쩍이기에는 너무 나이를 먹었음에도 그의 노래 하나를 처음 들었을 때처럼요.

 

헉슬리는 말했다

내가 그 목욕탕에서 목욕을 한 것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적어도 20년, 어쩌면 30년 쯤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여름 날, 몇 번인가 거기서 영화의 한 대목을 찍기도 했던 오래된 목욕탕 맞은 편의 더 오래된 단층 건물에 자그마한 카페가 생겼다. 이름은 <더 프라이빗>이다. 영화를 찍은 거리라곤 하지만 오래되었을 뿐, 그다지 분위기 있지도 않는 이 동네에 이런 카페가 되겠냐 싶었지만 그 안은 거리와 어울리지 않게 꽤 화려해 보였다. 그리고 입간판에는 <오픈 / 더 프라이빗>이라는 글씨가 금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프라이빗’의 오픈이라니 좀 어폐가 있어보였지만 빚을 내어서라도 프라이빗을 오픈하여 빛을 내기도 하는 것이 요즘 시절인지라 프라이빗에서 오늘 읽은 칼럼 속의 헉슬리를 생각하였다. “각자의 기억은 그의 사적인 문학이다. – 올더스 헉슬리.” 내가 다른 방식으로 허접하게 표현했을 뿐이지만 단출하고 명료한 것이 정말이지 <멋진 신세계>의 저자다운 멋진 말이다.(“옥아”라고 부르던 그 순간이, 그녀의 이름이내게  詩처럼 들렸던 것도 비슷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리고 한때 내가 부지런히 읽었던 숱한 과학철학 서적에서 그의 이름에 맞딱뜨리던 생각을 하며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어느 책에서, 어떤 강연이나 에세이나 또는 발표된 적 없는 원고에서, 어떤 이야기에서 그 말이 나왔을지에 관하여. “every man’s memory is his private literature. /aldous huxley.” 하지만 어느 인용에도 헉슬리가 어디서, 또는 어느 책에서 그렇게 이야기했는지 출처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그저 헉슬리가 말했다고만 이야기들을 할 뿐이었다. 이 세상에 나 비슷한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 몇몇이 질문을 던져놓은 것도 봤으나 누구도 정확히 답한 사람은 없었다. 다만, 어느 책에도 그런 문장은 없고 그가 그렇게 말했다고 알려져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선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의 해설에 인용되면서 더 알려진 것도 같은데, 번역자 역시 헉슬리가 말했다고만 했을 뿐이다. 진짜와 가짜가 뒤죽박죽인 세계에서는 마음에 닿는 한 줄이 중요할 뿐 그것이 누구의 말이든 그다지 상관이 없지만, 헉슬리는 말했다. 모두가 헉슬리가 말했다고들 한다. 그리고 그 자체가 사적인 멋진 문학이고, 문학이라고 말하기에는 헉헉 숨이 차고 빛을 발할 프라이빗 같은 것은 없지만 나도 사적이긴 하다. 인용만 남아 떠돌아도 ‘그들 각자의 영화관’처럼.

 

내가 시를 쓴다는 꿈

적어도 수십년 전, 장터도 아닌 외갓집 앞 포장도 되지 않은 길 한켠에서 약장수가 판을 벌였다. 둘 다 한 자 정도 크기나 되었는가 모르겠다. 주인공은 그다지 멋져 보이지는 않았던 장난감 로봇과 몸서리쳐지도록 커다란 기생충을 담아 둔 유리병이었다. 시원찮은 말주변으로 약장수는 슬그머니 로봇 자랑을 했다. 어딘지 어설퍼 보이는 그 로봇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은 물론이고 앞쪽의 나사 구멍 같은 홈으로 담배를 피울 수도 있다고 했다. 더 놀라운 것은 로봇 가슴의 사각형 부분에 텔레비젼이 장착되어 있어 로봇이 찍어온 아폴로 11호의 달착륙 장면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약간 미심쩍긴 했으나 로봇과 달과 환상이 한참 더 컸기에 나는 경악스런 회충약 선전까지 귀를 기울이며 지겨운 줄도 모른 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회충약은 잘 팔리지 않았고 내 가슴 어딘가도 아픈 것만 같았다. 파장이 되도록 로봇은 끝내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그 새카만 사각형은 한번도 켜진 적 없이 새카맣게 끝이 났다. 그 시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야기, 천불 소득 백억불 수출로 선진국이 된다는 꿈도 그랬다. 세기가 바뀌도록 내가 시를 쓴다는 꿈도 그랬다. 적어도 수십년, 그냥 그랬는데 속에 천불만 났을 뿐 언제적 파장인데 아직도 그 새카만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약장수는 사라졌고 약장수는 따로 있고 나는 어딘가 틀림없이 아픈 것만 같다.

 

 

/2016. 8. 24.

 

 

 

찢어버린 노트 한 장, Batatinha

Batatinha(Little Potato)는 ‘쌈바의 시인’이라 불리우는 브라질의 쌈비스따다. 하지만 그는 대개의 쌈비스따처럼 기쁘거나 슬퍼거나  활력이 넘쳐나는 리듬 대신 어딘지 내향적이거나 심지어 자기성찰적인 느낌을 주는 느리고 정적인 쌈바를 택했다. 제목 또한 기존 음악들과는 많이 다른 성향을 보여주며, 그의 쌈바엔 현악기의 사용도 자연스럽고 느릿한 노래들이 더 많다. 그의 모습을 보면 젊은 날에도 새하얗던 머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사실 내가 이야기 하고픈 것은 그의 음악과는 좀 다른 나 자신의 오래된 기억에 관한 것이다. Read More

my breast bone harper +

they made a harp of her breastbone,
whose sound would melt a heart of stone.
they took three locks of her yellow hair,
and with them strung the harp so rare.
/cruel sister, pentangle

 

헤아리기도 곤란한 시간 저편의 어느 나른했던 오후, 이어폰을 꽂고 엎드려 잠이 들었는데 어떤 목소리가 꿈결처럼 부드럽게 노래하기 시작했다. 부드러움은 금세 쓰라림으로 바뀌는가 싶더니 긴장과 이완을 거듭하며 정점을 향해 맹렬하게 불타올랐다. 일렉트릭 기타도 드럼도 없었지만 그 모두를 압도하는 무엇인가가 노래 전체를, 아니 내 마음을 온통 휘감고 있었다. 결국 잠에서 깬 나는 그 노래를 찾아보았다. 인트로까지 들었을 때만 해도 도노반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지만 그 강렬함은 도노반에게선 보기 힘든 것이었고 노래의 주인공은 roy harper였다. 그의 목소리가 격렬하게 울려퍼질 때나 높고 가늘게 이어질 때 내 마음도 그대로였다. 나는 cruel sister의 사연을 차용하여 ‘my breast bone harper’라 불렀고 이 노래는 한때 내 마음의 頌歌 같은 것이었다. me and my woman과 비슷한 포맷을 지녔지만 기타와 보컬뿐인 the same old rock 또한 내 귀를 울렸다.(이 곡에선 지미 페이지가 어쿠스틱 기타로 격렬한 연주를 들려준다).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으로 나는 그 노랠 듣곤 했다. 보컬과 기타 모두에서 그는 이 앨범으로 정점을 찍었고 ‘애비로드’에서 녹음된 <stormcock>은 1971년에 발표된 그의 다섯 번째 앨범이었다. 기타와 목소리 그리고 제한적인 오케스트레이션만으로 그는 모든 것을 노래했다. 하지만 이 노래를 頌歌로 여겼던 이는 결코…… 아니었다. /srs

 

 

 

 

 

 

뮤즈

잘못된 세계에 떨어진 어떤 이에 관한 단편을 읽은 적 있었다. <클락워크 오렌지>의 작가가 쓴 소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어떤 이의 소지품 가운데 세익스피어의 작품집이 있었던 것인지도 가물가물하다. 아무튼, 그 세계에 잡혀 글을 쓰는 괴물에게 작품을 갖다바치는 이야기였다. 괴물 작가(?)에게는 미지의 세계로부터 출현한 인간들이 뮤즈였던 셈이다 ㅡ 뮤즈의 종말은 비참했지만.

뮤즈라면 또 생각나는 가수는 보싸노바의 뮤즈란 별명을 가졌던 나라 리오다. 그녀는 아스뜨루드 질베르뚜의 경우처럼 좀 예쁘장한 스타일의 보싸노바를 불렀지만 질베르뚜와는 다르게 마음을 끄는 구석이 있다.(그래서 그녀의 노래 가운데는 “내가 없는 날” 듣고 싶은 곡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파서의 가수와 작곡가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감을 줬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오히려 그 시대 mpb 씬에 뮤즈가 있었다면,  그들의 부스터가 되었던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가 더 그랬을 것이고 그들의 뮤즈였을 것이다. 바덴 포웰, 씨꾸 부아르끼, 또낑요, 프란시스 하임, 에두 로부, 그리고 조빙까지가 그 뮤즈로부터 영감을 받아 최고의 작품들을 만들어내었다.(아이러니컬한 일이지만 그 뮤즈와 함께하지 못한 이들은 뮤즈의 사후에 더 빛을 발했다.)

뮤즈가 직접적으로 무엇인가 동기를 만들어줄 수도 있겠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도 뮤즈의 일이다. 다만 뮤즈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그렇다. 뮤즈가 반드시 여자인 것도 아니고,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한번도 만나지 못한 존재일 수도 있고, 매일 보는 누군가일 수도 있고, 오래전에 버렸거나 스스로 달아난 만남일 수도 있다. 뮤즈와의 만남과 이별, 뮤즈는 대개 그런 것이고, 나는……

 

si je devais manquer de toi, 내가 당신을 그리워해야 한다면.

 

 


/jean-louis murat

 

c. b.

알 파치스타일지 씨루 파치노일지 조금 삭은 알 파치노를 생각나게 하는 파서 출신의 이 타악기 연주자는 슬라이드/페달스틸 기타의 그렉 리즈처럼 숱한 앨범과 라이브에 참여하면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그의 퍼포먼스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실험적이고 상큼하면서도 정열적이다(가끔은 정신과 합동치료 같이도 보인다.ㅎㅎ). 역시나 예측 불허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온 존 존/마크 리봇과 오래도록 함께했으며 뉴 자이언 트리오와의 협연도 인상적었고 요요마에서 스팅, 허비 핸콕, 데이빗 브로자, 폴 사이먼 등에서부터 독특한 퍼포먼스를 포함한 자신의 밴드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적 대역은 꽤 넓다.

아래 곡은 내가 처음으로 들었던 뉴 자이언 밴드와의 협연으로 이디쉬 스타일과는 다른 사운드를 들려주며 꽤 상큼하다. 그의 이름을 파서 식으로 부른다면 씨루 밥찌스따에 가까울 듯도 싶지만 국적을 뛰어넘은 타악기 연주자인만큼 시로 밥티스타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cyro babtis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