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mdr-e888이 내가 아는 최고의 이어폰이었던 시절이 조금 지난 뒤 나는 “내 귀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이어폰이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무슨 근거 박약한 자신감이었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하드웨어에 대한 소프트웨어의 우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기도 했다. 그것이 물론 ‘청력’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지금 와서 보면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내 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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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가 부르는 소리
그 여름날의 산자락, 재래식 화장실에는 알지 못할 작은 곤충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벌레들의 날개짓 소리가 작지만 또렷하게 여기저기서 들렸다. 역한 냄새, 역한 소리 속에 누군가는 그것의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고 누군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어딘가의 존재가 되었음에 그 작은 목숨들의 소리가 묘하게 처연하게 들렸던 것을 기억한다. <날개가 부르는 소리>는 아가싸 크리싀티의 단편 제목이다. 오래 전에 몇번이고 […]
그래서 버튼이 작동하였다.
그들에게 물었다. “여기 이 모두를 그 하루 전으로 돌릴 수 있는 신비로운 힘을 지닌 버튼이 있습니다. 당신은 기꺼이 버튼을 누르겠습니까?” 모두들 그러겠노라고 했고 담담한 그들의 확신은 그것이 돌이킬 수 없음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똑같은 힘을 갖고 있었다. 그분은 내 모든 것을 잃을지라도 당연히 누르겠노라고 비장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가슴이 찢기우고 팔다리가 끊어지는 아픔을 느꼈을 분들은 실낱같은 […]
1층으로부터의 편지
<내재율> 내ː재-율, 內在律 자유시나 산문시 등에서 문장 안에 잠재적으로 깃들여 있는 운율. ↔외형률(外形律). /구글 사전 언제나 낯선 길 ㅡ 오늘 사무실 나와 보니 문 앞에 종이 하나 꽂혀 있었다. 손님의 메시지인가 했는데 아래층 맥주가게서 빼곡히 적어놓은 사연이었다. “만나 뵐 기회가 많지 않아서 편지 드립니다”로 시작한 글은 실은 일종의 수기식 수도요금 청구서였다. 오래된 낡은 […]
saudades do……
자나깨나 너의 생각 잊을 수가 없구나…… 많은 것이 그립고 안타까운 밤, 풀장 옆에 입주자들을 위해 설치되어 있는 바베큐 코너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들어왔다. 밤공기는 좀 쌀쌀했지만 추위는 그닥 느껴지지도 않았다. 노트북 앞에 앉아 무심결에 즐겨찾기 링크를 눌렀더니 화면에 뜬 것은 옛 가요 사이트였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의 음악들을 비교적 쉽게 들을 수 있는 곳이다. 거기서 또 […]
내가 없는 날의 리스트 +
최근 친구 아버님의 문상을 다녀와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만약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장례식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실없는 상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사실 그 생각은 한 두해 전, ‘노래 리스트’ 만들다가 시작된 것이다. <캡틴 판타스틱>에서 화장한 유골을 공항 화장실(^^)에 뿌리는 장면을 보면서 느낀 것도 포함하여. <죽고 난 뒤의 팬티>처럼 소심한 삶의 안할 걱정일지 모르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