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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ching the watchers

돌아가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냥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허울좋은 명분을 미스릴의 갑옷인양 여전히 걸쳐입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빛나는 갑옷 너머를 볼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 감시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설 수 있는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상당수 감시자들의 역할 또한 교묘하게 변화되고 있음 또한 분명하다. 감시해야 할 대상을 감시하는 것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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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없는 이어폰

소니 mdr-e888이 내가 아는 최고의 이어폰이었던 시절이 조금 지난 뒤 나는 “내 귀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이어폰이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무슨 근거 박약한 자신감이었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하드웨어에 대한 소프트웨어의 우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기도 했다. 그것이 물론 ‘청력’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지금 와서 보면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내 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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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슬픈 눈으로

거미줄 낀 화장실 낡은 창 너머 다세대 주택 지나 잠든 것처럼 주저앉은 옛집 위로 산복도로 가는 길 건너 노란 바탕에 붉고 푸른 글씨 할인마트 슈퍼 오래된 간판 하나 보인다. 셔터 내려진지 얼마나 되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내가 갈 일은 별로 없는 길, 아마도 한번쯤 들렀던 것도 같은 가게. 이웃들이나 알까 언제부터 있었던 가게인지 언제 문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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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가 부르는 소리

그 여름날의 산자락, 재래식 화장실에는 알지 못할 작은 곤충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벌레들의 날개짓 소리가 작지만 또렷하게 여기저기서 들렸다. 역한 냄새, 역한 소리 속에 누군가는 그것의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고 누군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어딘가의 존재가 되었음에 그 작은 목숨들의 소리가 묘하게 처연하게 들렸던 것을 기억한다. <날개가 부르는 소리>는 아가싸 크리싀티의 단편 제목이다. 오래 전에 몇번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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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버튼이 작동하였다.

그들에게 물었다. “여기 이 모두를 그 하루 전으로 돌릴 수 있는 신비로운 힘을 지닌 버튼이 있습니다. 당신은 기꺼이 버튼을 누르겠습니까?” 모두들 그러겠노라고 했고 담담한 그들의 확신은 그것이 돌이킬 수 없음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똑같은 힘을 갖고 있었다. 그분은 내 모든 것을 잃을지라도 당연히 누르겠노라고 비장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가슴이 찢기우고 팔다리가 끊어지는 아픔을 느꼈을 분들은 실낱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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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으로부터의 편지

<내재율> 내ː재-율, 內在律 자유시나 산문시 등에서 문장 안에 잠재적으로 깃들여 있는 운율. ↔외형률(外形律). /구글 사전     언제나 낯선 길 ㅡ 오늘 사무실 나와 보니 문 앞에 종이 하나 꽂혀 있었다. 손님의 메시지인가 했는데 아래층 맥주가게서 빼곡히 적어놓은 사연이었다. “만나 뵐 기회가 많지 않아서 편지 드립니다”로 시작한 글은 실은 일종의 수기식 수도요금 청구서였다. 오래된 낡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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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가 궁금했지요

금요일에 반납해야 했지만 속에 탈이 나서 이틀을 꼼짝없이 누워 지냈습니다. 그래서 월요일 출근하면서 도서관부터 들렀지요. 아 그런데 오늘이 쉬는 날이었네요. 도서관 앞 주차장에 와서야 알았습니다. 몇대의 차가 있는데 출입구는 쇠로 된 장벽으로 막혀 있었습니다. 그것 좀 쌤통이다 싶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들 주인에겐 더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연체 상태라 다른 책을 빌릴 수도 없는데 휴일이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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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가요

차마 한마디 꺼내지도 못하고 애닳게 기다리던 노래 있었지요 아침 바람 찬 바람에 소식 하나 들려주길 고대하며 엽서 한장 써붙이던 시절도 있었지요 하지만 흘러나오는 노래란 바람빠진 풍선처럼  희망하지 않는 것들이었지요 희망 가요 희망이 가요 여기 희망이 가요 그렇게 흘러들 갔지요 떠난 자리에 희망이 또 갈까요 낮은 자리 또 채워질까요 원치 않는 노래만 줄을 잇는데 지우고 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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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허함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지퍼백에 넣어 온 <혼자 가는 먼 집>을 좌석 옆에 끼워뒀다 쉬엄쉬엄 다 읽었다 내게도 더이상 어울릴 수가 없을 법한 제목이었다 누군가 꿈꾸고 간 베개에 기댄 채+ 불편한 자세에도 불편한 마음의 자세에도 더 어울릴 수는 없었다 보르헤스의 강의와 이창기는 미로처럼 찬밥처럼 화물칸 어딘가에 갇혀 있었다 나는 기내 반입량을 초과하여 지퍼백에 1리터의 액체를 넣어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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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dades do……

자나깨나 너의 생각 잊을 수가 없구나……   많은 것이 그립고 안타까운 밤, 풀장 옆에 입주자들을 위해 설치되어 있는 바베큐 코너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들어왔다. 밤공기는 좀 쌀쌀했지만 추위는 그닥 느껴지지도 않았다. 노트북 앞에 앉아 무심결에 즐겨찾기 링크를 눌렀더니 화면에 뜬 것은 옛 가요 사이트였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의 음악들을 비교적 쉽게 들을 수 있는 곳이다. 거기서 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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