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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과 : 부서질만큼 상했다

사과한알이떨어졌다.
지구는부서질정도로아팠다.
최후.
이미여하한정신도발아하지아니한다.
/최후, 이상

 

홍콩의 빈과일보가 강제로 폐간되었다.
알고보니 빈과일보의 사주는 “지오다노”를 창업한 사람이었다.

지오다노 하면 또 생각나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21년쯤 전의 이맘때이다.
나는 동생과 남포동엘 가서 이런저런 구경도 하고 식사도 하고
그리고 지오다노에 들러 내 바지도 사고 그랬다.
색깔이며 모양새며 동생이 다 챙겨주었던 것이
광년의 시간처럼 아득하게도 느껴지고 엊그제 같기도 하다.

빈과일보의 폐간은 중국의 홍콩 장악에 있어
한 단원의 결말처럼 보인다.
언로까지 거의 완벽하게 막혀버린 홍콩…
이제는 정말 중국과 다름없는 통제체제로 들어간 셈이다.

홍콩 사태와 조국 사태는 비슷한 시기에 크게 번졌는데
나는 둘 다 공히 쉽지 않은 길에 있다고 생각했고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때의 예상처럼 암울한 부분이 더 많아 보이고
앞으로도 간단치는 않을 것이다.

미얀마의 경우는 좀 달랐다.
보다 다양한 이념의 스펙트럼에서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
나도 물론 미얀마에 대해 늘 관심갖고 챙겨본다.
(물론 로힝야족에 대한 아웅산 수키의 잘못에 대해서도 똑같이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홍콩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이 추구하는 민주주의(?)가 몹시도 선택적이라는 점에서
매우 잘못된 것이다.

(미얀마 사태에 대해서는 비판하면서 홍콩에는 입을 다물고 있는)
정부에 대해서도 다를 바 없지만
민주와 인권, 언론자유를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일부의 선택적 침묵은
정부와는 다른 차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slow boat to china???
홍콩의 몰락이 내 일처럼 아프다.

 

/2021. 6. 25.

꽃의 이름

일로 해서 몇년간 알고 지낸 할아버지 한분이 두어달 전 사무실로 화분을 갖고 오셨다. 자신이 키우던 꽃의 줄기를 떼서 옮긴 것으로 귀한 꽃이라며 주셨다. 누군가가 원산지를 인도산이라며 주셨다는데 이름은 모르지만 석장짜리 꽃잎이 독특하다 하셨다.

떨리는 손 성치 못한 걸음으로 한손에 화분 들고 버스 타고 전해주신 노인의 마음을 생각하니 그 꽃이 어떠한들 이름이 무엇인들 감사히 소중히 키워야겠다 생각했다. 꽃은 쑥쑥 자랐으나 한참 동안 소식이 없더니 얼마전에야 자주색 꽃이 피었다.

엊그제 할아버지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아는 분으로부터 들었다는데 꽃은 뉴질랜드 앵초로 트라데스칸티아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했다. 오늘에사 찾아보니 트라데스칸티아는 맞는데 뉴질랜드 앵초는 아닌 것 같고 자주(털)달개비, 트라데스칸티아 실라몬타나Tradescantia sillamontana인 듯 싶다. 이름이 복잡하고 어려워 화분에 붙여라도 둬야 하겠다.

하지만 세장의 꽃잎을 지닌 이름모를 꽃은 그 전에 피었고 가느다란 줄기 뿐일 때도 있었고 아직도 피어 있다. 정확한 꽃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누가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괜찮다. 마음이란 그런 것, 작고 볼품없었던 그 식물이 귀한 것은 하나의 몸짓이 있었기 때문이다.

 

 

/2021. 6. 24.

열쇠의 안부

우리 다섯 손가락 가운데 하나를 잃고 망연자실해 있던 때였다.
정리를 하느라 미국엘 갔을 때 이런저런 인연으로 알고 계시던 분께서
콜로라도에 있는 별장의 열쇠를 주셨다.
혹시라도 콜로라도에 가게 된다면 내 집처럼 사용하라고 하셨다.
그런 마음이 큰 위로가 되던 시절이라 나는 돌아와서 아버지께 말씀을 전해드렸다.
1년에 6개월씩 눈이 내린다는 그곳,
콜로라도의 달 밝은 밤을 우리가 찾을 일 무에 있었겠냐만
아버지는 내가 잘 갖고 있는지 열쇠의 안부를 가끔 묻곤 하셨다.
사실 그 전에도 아버지는 콜로라도의 열쇠 하나 직접 받은 적이 있었고
그건 어디 두셨는지 잊었는데 내가 또 하나 받아온 것이었다.
콜로라도의 강물이 태평양을 돌고 돌아 다시 흘렀을 시간 동안
안부를 묻는 일이 점점 뜸해지더니 이제는 십여 년 동안 내게 물은 적이 없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도 그 열쇠가 어디 있는지 이제 알지 못할 만큼이다.
하지만 한때 열쇠의 안부를 안다는 것은 열쇠 그 자체였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콜로라도의 깊은 산골
모닥불 타오르는 멋진 산장에서의 경이로운 꿈의 시간이었다.
그리움으로 기다린다던 그 강물이 세상을 돌고 돌아 다시 올 시간 동안
남은 모든 손가락들은 열쇠의 안부를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잃어버린 손가락도 분명 그러할 것이다.

 

 

/2021년 2월 1일

지나가버린 말들

말은 얼마든지 바뀌기 쉽다. 정치인의 말은 더욱 그렇다.
몇년 전의 말을 자신에게 되돌려보면 있을 수 없는 것이 일어나는 것이
이 땅의 현실이다.
또 그것을 뒤집는 것에 관해 변명과 무시만이 있을 뿐,
어떤 부끄러움도 없다. Read More

Epitaph

괜찮아
그냥 단어들일 뿐이야
물로 쓴……+

 

세상의 숱한 묘비명들 가운데 딱히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은 없다. 킹 크림슨의 Epitaph처럼 Confusion이 내  Epitaph이 될 수도 없다. 존 키츠의 묘비명에 깊이 공감하였고, 묘비명은 아니었지만 “Ames Point”라는 이름이 붙은 표지석을 나는 기억한다. 눈물이 앞을 가렸던 2000년의 여름, 위스칸신의 위네바고 호수 제방 끝자락에서 인상적인 문구를 읽었으나 나는 제대로 기억할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최근에서야 작은 동판에 새겨진 글 전부를 알게 되었고 거기 새겨진 궁금했던 한 줄은 아래와 같다. Read More

정말이지 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

: 와이어리스의 저주, 저주받은 와이어리스

 

 

 

작년 초가을쯤, 누군가 내 시집을 궁금해 했다. 나는 그걸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그건 저주받은 시집이라고 말했다. 순전히 내 입장이라면 몇가지 다른 이유들을 갖다붙일 수도 있겠지만 그때 말한 것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허술한 글들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고, 다른 하나는 정말이지 끊어져버릴까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만약 그 시집을 받는다면 그 당사자는 머지 않아 나와 끊어질 가능성이 극도로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농담처럼 웃으면서 “그래도 괜찮다면……” 했더니 고개를 저었고 나는 시집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다 무형의 시집은 괜찮지 않을까 싶어 pdf 파일로 시집을 만들었다.(옛 시집은 아니고 ‘칼리지’ 어딘가에 올려져 있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 나름 공을 들여 편집을 했고(제목도 물론 다르다) 앞쪽의 빈 페이지에는 한줄의 인사글을 쓰고 스캔해서 넣었다. 받은 사람은 기뻐했고 자신의 카톡 프로필에 그 페이지를 올려놓기도 했다. Read More

마이 스윗 페퍼 랜드

중고등학교 시절의 마이 스윗 페퍼 랜드라면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십년의 시간 뒤에는 많이 달라졌다. 유튜브에서 향신료가 너무 많이 사용된 듯한 이란의 어느 노래를 들었을 적에 그 배경에 있는 어떤 얼굴이 몹시도 인상적이었고 그것은 실크로드의 끝자락에서 보았던 여인을 생각나게 했다. 나는 누군지 모를 그 얼굴의 주인공을 용케도 찾아내었는데 그녀는 그 전에 보았던 <패터슨>의 여주인공이었던 골쉬프테 파라하니였다. 묘하게도 그녀 덕분에 나는 이란 음악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살펴보게 되었고 더 많이 알게 되었다. 모흐센 남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오묘한 소리를 지닌 항 드럼 연주도 하고 모흐센 남주의 라이브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 뿐이다. 마이 스윗 페퍼 랜드 또한 파라하니가 나왔던 영화이지만 대략 살펴만 본 수준이라 특별히 남은 느낌은 없다. 그럼에도 영화 속의 멋진 연주곡을 나는 잊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의 이미지는 내게 있어 아주 잠깐 스쳐간 얼굴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잠깐에서 나는 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꼈다고 생각하며, 인적 찾기 힘든 곳이라 한들 그곳이 바로 ‘마이 스윗 페퍼랜드’임을 안다. 내 모든 유치했던 시절의 한줄 가사처럼, “언제나 우리가 만나던 그곳”.

 

 

 

 


muhteşem ses / golshifteh farahani

쏟아지는

처음 브라질 음악을 듣고 혹해 포르투갈어 제목들의 뜻을 찾아 헤매일 적에
가장 눈에 들어온 단어는 saudade였다. 브라질과 포르투갈에서 카보베르데까지,
파두와 쌈바, 보싸노바와 모르나까지
포르투갈-브라질만의 정서를 정확히 이해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나는 그것이 그리움과 매우 비슷한 것이라 생각했다.
minha namorada, 나의 연인을 향한
또는 특정한 장소나 시간 또는 그 모든 것이 함께 했던 순간을 향한.
그리고 그리움은 포르투갈어에서 한글로 바뀌어 내게로 왔다.

 

 

saudade는 그리움
엎질러진
돌이킬 수 없는
서투르고 느린 손이 보낼 수 있었던 메시지는
그것 뿐,
쏘다지는 그리움
안개처럼 안개비처럼 흩날리다
쏟아지는 그리움

 

 

/2019. 10. 11.

 

당신과 나의

그다지 즐겁지는 않은 그저 그런 길, 매일 지나치는 오래된 세탁소 무슨 사연인지 주인 아저씨와 그분 할머니만 계시는 듯합니다 일주일에 서너번, 할머니는 가게에 나와 앉아 거리를 바라보십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눈 마주치면 나는 그분들과 늘 인사를 나눕니다 딱히 즐거울 것도 없는 길 하지만 할머니께 인사드릴 적에는 늘 웃습니다 걸음도 건강도 이제는 편치만은 않으신 할머니도 늘 나를 향해 반갑게 웃어주십니다 출근길 퇴근길 5초 10초씩이나 될까요 일주일에 서너번, 일년이라고 해야 얼마나 될 것이며 십수년 그랬다고 한들 또 얼마나 될까요 하지만 할머니는 두고두고 웃는 모습의 나를 기억할 것입니다 별로 웃을 일 없는 내 삶에서 웃는 모습이 나에 관한 거의 모든 기억일 것이에요 나 또한 할머니를 그렇게 기억하고 또 기억하겠지요 매일 그렇게 인화된 적 없는 사진이 켜켜이 쌓이고 있습니다 그 어떤 사연도 없는 그저 웃음뿐인 단 한장의 사진이요

 

 

/2019. 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