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1987년 12월이었을 것이다. 한 시간은 족히 걸어야 민가를 만날 수 있는 깊은 산골 호젓한 숲속을 홀로 거닐었다. 담배 연기 가득했던 가슴은 차가운 공기 속으로 풀려났고 온통 눈덮인 개울가 바위 아래 고드름을 떼어먹으며 즐거웠다. 얕은 숲 사이 어딘가 잠깐의 봄날인양 눈도 쌓이지 않은 공터가 나는 아까웠다. 꽃과 같은 삶과 꽃일 수 없는 삶과의 갈등 사잇길에 […]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쉽사리 떨쳐내지 못할 현실이라는 이름의 일정치 못한 중력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나이라면 그다지 놀랍지도 않은 일일 수도 있다. 적도를 기준으로 지구는 소리보다도 빠른 초속 500m, 시속 1600km 속도로 자전하면서 하루라는 이름의 24시간을 보내고 초속 30km의 속도로 9억 5천만km에 달하는 거리를 태양을 따라 돈다. 우리는 그것을 1년이라 부른다. 태양계는 또 은하계의 중심을 초점으로 […]
발라낼 뼈라도 있긴 있었을까 다만 콩닥대며 짧은 꿈 잠시 꾸었을 뿐 마음의 지붕에조차 올라본 적은 없었다 추려낼 꿈이라도 어디 있긴 있었을까 온갖 두려움과 낯 뜨거움과 부끄러움의 이름 너머 숨다 달아나다 잠시 퍼덕였을 뿐 이 하루 겨우 재울 양념에 절어서 사는 날개 없는 자의 걸음 같은 가슴살 이내 하루살 /2006. 7. 19. 0:47 […]
세월따라 노래따라인지 방향만 바뀌어 교묘하게 흘러나오는 음악 에 귀를 기울인다 잔잔잔잔 하면 떠오르는 운명 느린 듯 장중하게 어쩌면 음침하게 잔잔잔잔 그리고 나의 어이없는 운명 같은 전전전전 반추는 울증의 전조라는데 전전전전 앞전은 뒷전으로 밀린 채 오직 앞전으로만 가는 운명 씹고 또 씹어 누군가의 죄 대신 십자가 대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씹어대는 전전전전 가려도 가려도 절로 나올 […]
늦은 아침 사무실 와서 자리에 앉으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커피 타는 일입니다. 설탕 넣지 않은 라떼 한 잔 마시고 나와 달달함이 간절해지는 시간, 웬지 수사의 아침 같은 드립커피보다도 공장 생산 가격으로 판매하는 200개들이 커피믹스보다도 두툼한 봉지에 쌓인 정체불명의 베트남 커피가 제일 생각납니다. 이제 막 볶아낸 듯한 커피의 향이 과할 만큼이지만 그게 진짜가 아닌 ‘香’이라는 […]
아득히 까마득히 알고도 몰랐고 알았지만 몰랐다 마당의 연못엔 알지 못할 구멍 뚫려 있었으나 위태로운 세계에 뿌리를 내린 채 연꽃 하나 피었다 졌다 蓮이 있기는 있었는지 바쁠 일도 아닌 것에 허둥대며 한번 돌아보지도 못하고 나는 떠나왔다 다시 찾아오니 꽃은 사라지고 그 자리엔 연밥이 걸려 있었다 거기서 전화기를 그렸던 너는 말을 건네었고 나는 귀를 기울였다 소식 기다렸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