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Woke Enough to Follow

: 각성의 환상

 

오전 11시, 주택가 편도 차선 한 귀퉁이로 폰을 들고 걷는 사내가 눈에 들어온다. 마흔 즈음으로 보이는데, 지금 뭔가 분명한 일을 하는 사람 같지는 않다. 그는 전혀 바빠 보이지 않았고, 폰 스피커에서 소리가 흘러나온다. 통화 중인가 했지만, 길 따라 걸으며 유튜브에 얼이 빠져 있다. 정치 이야기다. 특정 정당의 주장을 강하게 뒷받침하는 단어들이 어김없이 가감없이 흘러나온다. 그는 분명한 일을 하고 있고, 그는 급박하고, 그는 너무 몰두해서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는지조차 생각하지 않는다. 미래는 그의 손에 달려 있고, 어쩌면 내 미래도 그러하다.

에임즈 포인트, 1999에서 2024까지

 

호수 사이로 이어진 길의 끝에는 표지석이 있었고, 동판에는 “에임즈 포인트”라는 단어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었다. 호수는 1999년 12월에 잠시 들렀으나 에임즈 포인트까지 간 것은 다음 해 여름 걸어서였다. 이상하게도 표지석 제일 첫줄에 적힌 문장이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영영 되살리지 못할 기억인양 가물가물했으나 나는 꼭 알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2000년 여름에 찍었던 사진조차도 글자를 읽을 수 있을 만큼은 아니었다. Read More

처음 들은 꽃집 이야기

아파트 윗편 입구 쪽에 꽃집이 있었던 것이 얼마나 오래인지 모르겠다. 적어도 20년은 더 되었을 것이다. 부지런한 부부가 작고 허름한 가게에서 아침마다 화분들을 가지런히 내어놓고 저녁이면 또 다시 정리하고 문을 닫는 곳이다. 거의 창고처럼 보이는 이 꽃가게는 나름으로 오래된 아파트에 정취를 더해준다고 나는 생각하곤 한다. 옛날의 슈퍼도, 그 다음의 편의점도 지금은 결국 문을 닫았으나 꽃집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인아저씨는 무뚝뚝해 보였지만 이웃 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친구도 많아 보였다. 가끔은 저녁 시간에 꽃집 안의 작은 테이블에서 친구들과 맥주잔을 기울이는 모습도 드물지는 않았다. 아주머니는 친절하고 얌전한 분 같았고, 모르긴 해도 매일 오가는 나에 대해서도 좋게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해마다 벚꽃 피는 시절이면 꽃가게도 봄기운을 받았고 5월에도 손님들이 자주 북적였던 곳이다. 꽃집 아저씨의 아주 오래된 아반떼 승용차는 언제나 꽃집 건너편 길가에 주차되어 있었고 그 모습은 오래도록 변함이 없었다. Read More

오독오독오도독

여기 잠들다 ㅡ 그것은 무한에 가까운 복잡한 암호체계였건만 그는 극소수의 무엇인가에만 쏠렸다. 애써 해독해낸 놀라운 문장들. 하지만 어떤 것은 형편없는 오독이었고, 나는 그것에 어찌할 바를 모르곤 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비슷하였고 내일도 딱히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다가온 오늘…… 반투명에서 투명으로, 말하자면 그는 언제나 유명을 달리한 유령이었다. 불가해한 세계를 홀로 그리며 이해하기를 좋아했으나 스스로는 결코 이해받지 못했던 사람이란 묘비명은 일찌감치 가슴 속에 새겨져 있었다. 새기고 꽂고 새기고 꽂고 원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원치 않는 바도 아니었다며.

문 (더) d.

: 2020년 12月에 바침.

 

d는 딜라잇, 축제를 즐겼지 산해진미를 꿈꾼 것은 아니지만 하루 이틀의 출출함을 그 순간의 감동에 비할 바는 아니었어 춤을 추었지 저마다 자유의 꿈을 갈망했고 함께 눈물도 흘렸지 오 마이 딜라잇, d는 마이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