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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칼크의 도시에 관한 기억

그것을 당신들은 몰랐다. 왜냐하면 살아남은 부족은 몇 세대 동안이나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고 죽어갔기 때문이다. ― 티마이오스   그것은 손치스라는 이름을 지닌 이집트 신관의 꿈에서 비롯되었다. 그가 사이스에서 한 신전의 관리인으로 봉직할 때 그리스의 철학자 솔론을 만나 자신이 작성한 꿈의 조서의 일부를 보여준 것이다. 나는 킬허의 고전적인 지도를 통해 그의 꿈을 다시 돌아보았고 한스 헤르비거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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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장의 책

마침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원하던 장소를 우리는 갖게 되었다. 세상에 없는 책이 없는 도서관이다. 그곳에서 절판된 책을 찾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세상에 하나뿐인 책이라 해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고 소실된 책이나 심지어 다른 사람의 책에 이름만 올라 있는 책을 찾는 일조차도 크게 힘든 일은 아니다. 옛 알렉산드리아나 대영박물관, 혹은 의회도서관의 사서로 일하던 사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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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장소와 도저히 복구 불가능한 기억. ― 크리스티나 펠리 로시*   항구는 모처럼 동방을 돌아온 배의 소식으로 흥청거렸다. 나의 일터와 항구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지만 내 마음의 설레임은 배가 들어옴으로서 생긴 것임을 안다.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어도 각별한 친밀감으로 맺어진 항구의 관원은 그 배의 물건들을 면밀히 조사한 후 내가 필요한 것들을 먼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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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나무 끝의 부용화 산 속에서 붉은 봉오릴 터뜨렸네 개울가 집이라 적막하여 인적 없는데 어지러이 피었다간 또 지는구나 /신이오, 왕유 木末芙蓉花  목발부용화 山中發紅萼  산중발홍악 澗戶寂無人  간호적무인 紛紛開且落  분분개차락 /辛夷塢, 王維   그 이름을 기억하거나 외우고 간직하는 것만이 영속성을 보증하는 틀림없는 방법일까. 만약 그러하다면 그것은 참 서글픈 일이다. 구구절절 옳은 말 ㅡ 사람들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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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아에게 전하는 인사

델리아 엘레나 산 마르꼬, 보르헤스     바람도 선선한 가을날입니다. 늘 다니던 길에서 새로운 가게 하나를 발견한 것처럼 늘 보던 화단에서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를 나무 하나를 유심히 바라보는 것처럼 그렇게 델리아를 보았습니다. 새로운 것이 아니어서 새로운 느낌, 오래도록 여기저기 뒤적여 왔으나 너무 짧은 글이어서 그냥 무심하게 넘어갔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거리를 헤매이면서도 그녀를 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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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은 보글보글

門을 암만 잡아다녀도 안 열리는 것은 안에 生活이 모자라는 까닭이다 ― 家庭, 이상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가정家庭은 꾸리지 못하고 가정假定으로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기꺼이 꿈을 꾸라면, 더딘 이 밤 함께라면…… 하는 오붓하고 화기애애한 가정이지요 화기엄금의 썰렁하고도 위태로운 밤이지요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어느 작자 말과는 달리 절로 발길 닿는 곳, 문 잡아당기면 잘도 열리어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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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을 읽다

불가해한 순열의 초록빛 문자는 아니었습니다. 어디서 날아온 소식이던지 방충망의 모눈을 따라 드문드문 물방울 맺혀 나 모르는 세상의 철자가 되었습니다. 낯설고도 반가운 사연, 그렇게라도 듣게 되는 장문의 소식입니다. 빗줄기를 따라 사연도 그만큼 길었던가요. 의미 없는 의미의 심장 ― 거기에 뜻 있겠거니 모눈의 마음이 부지런히 받아서 적었습니다. 어느 아침 햇살에 잊혀지는 꿈처럼 해독解讀은 오히려 해독害毒, 조금 틀렸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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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너 대신 짧은 봄밤 새로 핀 꽃구경도 즐거웠다만 건너편 집 처녀 다소곳이 설거지하는 모습도 참 예쁘다 전해지려나 이 방을 흐르는 노래 그곳까지 들릴까 나 대신 짧은 봄비 마음아 너는 어디까지 가려나 얼마만큼 쌓이어서 한 줄 닿으려나 너 대신 짧은 봄꿈 양지 바른 곳에 누워 노랠 따라 불렀더라 구름에 햇살 오가다 어느 하루 잠들었는데 자장가 부르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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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시온지……

누구시온지 초면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비루한 행색으로 아 이런, 오 저런 시답잖은 생각만 읊어대었습니다. 밤낮없이 낯 뜨거운 일이었어요. 시집은 어떤가요 장가도 못갔는데, 시시각각 독수공방 시나 읊어볼까요. 책 하나 만든다면 정말 좋겠는데 어디 더 보태어 책 잡힐 일 있나요. 누구 책 망할 일 있나요. 시시콜콜 웃을 일이 아닌데 그냥 웃고 말아야 겠어요. 당신도 이쯤에서 웃어주시고. 시샘도 가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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