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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의 한 줄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을 따라 흥얼거리다 문득 밤하늘을 바라 보았지 별 하나 찾기 힘든 그곳, 그리운 얼굴을 떠올리기는 어려운 일이었지 /창백한 푸른 점     어릴 적에 본 학원사의 <코스모스>는 우주에 대한 상상의 보고였다. 지름 10만 광년의 은하에 수많은 별이 모여 있는 도판을 보면서 무한에 관한 수많은 꿈을 꾸던 시절이었다. 교양서적이라면 교양서적일 뿐이겠지만 처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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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hook

이들의 스테이지를 보면 먼저 눈쌀이 찌푸려질지도 모르겠다. 양아치 같은 인간들이 지저분하고 게걸스런 분위기로 노래하는데다 민망한 장면들도 없지 않다. 술 내지 약에 쩔은 듯 싶고 (누구는 그 몽롱한 세계를 거창하게 그리고 섬세하게 다듬어 “a day in the life”를 만들고 어떤 이들은 살짝 미친 듯 뉴올리언즈의 위치 퀸 “마리 르보”를 노래한다) 싸구려 같은데 묘하게 편안하고 막나가는 듯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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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에게 ◉

장안에 한 젊은이 있어 나이 스물에 마음은 벌써 늙어 버렸네   이하의 시는 이렇게 시작했다. 젊어서도 젊은 적이 없었던 나는 그 두 줄에서 벌써 ‘진상’을 보았다. “진상에게”의 진상은 이하와 비슷한 연배의 품격있는 청년이었던 것 같지만 그 진상이 허접한 어떤 이와는 그다지 관련이 없다 보니 자꾸 엉뚱한 것만 더 눈에 들어온다. 진상은 허상이 되고 거기에서야 진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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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롱이 +

공항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였다. 길은 그다지 막히지도 않았고 운전을 좋아하지 않는 내게도 부담이 되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오랜만의 만남이어서 나는 전부터 나름의 준비를 했었고 그 가운데 하나는 차 안에서 들을 음악에 관한 것이었다. 터널로 진입하기 전에 있는 번잡한 교차로에서 정지신호에 나는 조심스레 차를 멈추었다. 어쩌다 겪게 되는 잠깐의 정적 속에 귀에 익은 감상적인 플라멩코 스타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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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정)살인의 추억

“치정살인”이란 단어는 내가 썼던 그 노래에 대한 가장 간략한 정의였다. 본인이 기억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오래도록 연결이 끊어진 채인 그가 플로라를 알게 된 것은 레코드판에 바늘을 올리던 내 손끝에서였다. 그런데 이 단어를 친구의 아이디로 들어간 고등학교 동창 ‘밴드’에서 보게 되리란 생각은 정말 못했다. (현재 내 폰에는 ‘밴드’도 ‘페이스북’도 없다. ‘카톡’을 쓸 일도 없다.) lily of th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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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전전전

세월따라 노래따라인지 방향만 바뀌어 교묘하게 흘러나오는 음악 에 귀를 기울인다 잔잔잔잔 하면 떠오르는 운명 느린 듯 장중하게 어쩌면 음침하게 잔잔잔잔 그리고 나의 어이없는 운명 같은 전전전전 반추는 울증의 전조라는데 전전전전 앞전은 뒷전으로 밀린 채 오직 앞전으로만 가는 운명 씹고 또 씹어 누군가의 죄 대신 십자가 대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씹어대는 전전전전 가려도 가려도 절로 나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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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베트남

늦은 아침 사무실 와서 자리에 앉으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커피 타는 일입니다. 설탕 넣지 않은 라떼 한 잔 마시고 나와 달달함이 간절해지는 시간, 웬지 수사의 아침 같은 드립커피보다도 공장 생산 가격으로 판매하는 200개들이 커피믹스보다도 두툼한 봉지에 쌓인 정체불명의 베트남 커피가 제일 생각납니다. 이제 막 볶아낸 듯한 커피의 향이 과할 만큼이지만 그게 진짜가 아닌 ‘香’이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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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생긴 과일 가게

몹시도 들여다보고 싶었던 여인의 방 ― 예전에 ‘경화미용원’이 자리했던 아파트 위쪽길 초입의 편의점 옆에 과일가게 하나 새로 문을 열었다. 얼마 전에 문을 닫은 가게의 간판이 그대로 붙어 있어 이름도 없지만 길 앞에까지 진열대를 내어놓고 불을 환히 밝힌 채 젊은 부부가 장사를 한다. 새로 시작한 가게라서 그런지 소박한 진열대도 과일도 반질반질하게 보이고 앞길까지 부지런히 쓸어가며 그네들은 희망에 부풀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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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명수게맛살조리예그리고

생명의 신비, 그런 책에서 봤던 것인가 모르겠다. 어떤 풀벌레가 있었다. 그놈은 독이 없는데 독 있는 벌레와 거의 같은 무늬를 흉내내어 제 목숨을 보존하고자 했다. 뱀 가운데도 무늬만 독뱀을 흉내내는 비슷한 종류가 있었다. 어쩌면 게맛살도 비슷하고 예전엔 그냥 바나나 우유였던 바나나맛 우유도 그렇다. 또 어쩌면 소화제 치고는 너무도 거창한 이름을 지녔던 활명수나 이제는 유용성이 입증되지 않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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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ado a você : 당신께 ◎

“진실이라 말 할 수도 없는 진실 같은 것, 소식 들은지도 오래입니다……”   처음 오신 당신께. 가끔 오시는 당신께. 이제는 오지 않는 당신께.   배경에 마음 같은 음악을 깔고 “당신께”라는 단어가 들어간 하찮은 글을 몇번 썼습니다. 끊어졌거나 이어져 있거나, 아니면 그 어떤 상태인지 알 길조차 없거나 스스로 망가뜨리곤 했던 그 어떤 연결에 대한 바램 같은 것이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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