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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자 델 온세

조금 늦은 일요일 오전, 나는 문득 보르헤스 소설 속 이국의 한 거리를 떠올렸다. 그의 가장 짧은 이야기 가운데 하나에 나오는 장소다. 만남과 이별, 삶의 덧없음과 영원에 관한 간절함이 담담한 어조로 담긴, 잔잔하고도 강렬한 이야기이다. <야누스>의 끝대목에서 아써 케슬러가 들려준 “보이지 않는 잉크로 쓴 텍스트”도 비슷한 인상을 내게 주었지만 그 느낌은 매우 달랐다. 기억력이 좋지 못한 나는 보르헤스의 이야기가 어느 작품집에 실렸던 것인지도 가물가물하고 그 속의 문장 하나 제대로 외우지 못한다. 하지만 두 페이지도 되지 않는 이야기에 비할 수 없는 많은 느낌과 생각들이 마음 속에 남아 있다. 그의 작품을 알거나 알지 못하거나 많은 사람들이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방문한다면 플라자 델 온세 — 미세레레 광장을 거닐며 그곳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을 것이다. 백명 가운데 하나, 어쩌면 만명 가운데 한 사람은 그의 몇몇 문장을 떠올리며 북받쳐오는 감회를 느낄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분명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주 중요한 일은 아니다. 한걸음 더 가서, 또는 한걸음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세상의 모든 장소에서 누군가는 플라자 델 온세를 보고 기억하고 되돌아보고 있기 때문이다. 함께 갔던 가게가 사라진 것을 보면서 느꼈던 상실감으로 헤아려보는 그리움…… 플라자 델 온세는 그립고 돌아가고픈 어딘가로 가는 틀림없는 지름길이기에 나의 길에서 그곳을, 누군가를 찾아 헤매이곤 한다.

 

언젠가 우리는 어느 강가에서 이 불확실한 이야기를 다시 나누게 되리라.
/J.L.B.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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