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그 집 앞 : Ask me why

재개발 플래카드로 어수선한 아파트 위쪽 입구 오른편에는 작은 편의점이 있고, 한 칸 건너 아담한 가정집이 하나 있다. 예전에는 이 동네 전체가 한적한 주택가였으나 이제는 주변에 원룸 빌딩이 너무 많이 들어서서 좀 삭막한 분위기다. 그래서 몇해 전 그 집을 새로 단장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좀 위태로운 느낌이 없지 않았다. 너무 당연한 것이 너무 낯설어져버린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작고 아담한 집이었던 까닭이다. 집 앞에는 자갈이 깔린 공터가 있어 차 2대 가량을 주차 가능하게끔 해두었고 그 너머에는 철골로 이루어진 하얀 담장과 아치형 대문이 있다. 집 입구에도 큼지막한 화분들이 있고 하얀 담장을 따라 넝쿨이 자라는 집이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가끔 그 집 앞에 멈추어 천리향 향기 맡으며 화분 바라보는 것을 몇 번 보기도 했었나 보다.

열 여섯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나는 비틀즈에 푹 빠져 살았어도 그들 노래 전부를 알지는 못했다. 정규 앨범/싱글의 대부분을 알고 있었지만 금지곡들을 위시해 빠진 곡도 꽤 있었다. 특히나 데뷔 앨범의 곡들은 모르는 게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특이하게 좀 일찍 들은 것이 있다면 1962년 함부르크 스타 클럽에서의 라이브 앨범이었다. 초기 락앤롤의 스탠다드 넘버들과 비틀즈 오리지널이 섞인 희귀한 앨범이었지만 정식 레코딩이 아니라 비틀즈가 유명해지자 누군가의 조악한 녹음본으로 제작된 앨범이어서 음질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카세트 테잎 2개로 만들어진 그 앨범을 참 열심히도 들었던 것 같다. 친구에게서 빌려 테잎으로 녹음해 듣던 <1962-1966>, <1967-1970> 컴필레이션 앨범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던 노래들, Strawberry Fields Forever나 Sgt. Pepper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Alles zur Geschichte der Beatles in Hamburg. - hamburg.de
/Star Club, 1962

 

그런 열여섯의 어느 날, 아파트 옆길을 지나가는데 누군가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다. 꽤 괜찮은 목소리였고 낭만적으로 들렸다. 잘은 모르지만 나보다 살짝 나이가 많은 사람 같았다. 귀에 익은 그 노래가 무엇인지 가물가물 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비틀즈의 Ask Me Why였다. 당시 내겐 그 노래가 수록된 앨범이 없었지만 바로 함부르크 테이프를 통해 잘 알고 있었던 곡이었다. 美感이나 멋에 관한 감각이 부족한 나는 그 노래가 그렇게 낭만적인 곡인지 몰랐다가 그날에서야 희미하게 알게 되었다. 노래 속의 주인공이 흘리는 눈물 같은 것은 더 이상 없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작고 아담한 집이 있는 바로 그 곳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지만 저녁이면 자그마한 차 두 대가 다소곳이 서 있는 그 집의 주인장이 예전 그 노래를 불렀던 바로 그 사람이 아닐까 바라고 믿곤 한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Ask Me Why, Beatles
(데뷔 앨범 모노 버전을 좋아하는 나는 심플하고 극단적인 스테레오가 불편하게 들린다.)

무치

데.호따.무치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