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간 가량 지하철 타고 처음으로 갔던 병원에서 대신 받은 처방전에는 여섯 개의 약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가운데 네 개의 알약은 날짜별로 포장되어 있었다. 둘은 따로 종이곽과 플라스틱 케이스로 받았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그 두 종류는 드시지 않는다. 약 먹기 전부터 사진 찍고 또 사진 찍고 뭔가를 폰에 메모한다. 이쑤시개로 조심조심 신중하게 봉지를 뜯는다. 그리고 아끼고 아끼고 또 아끼다 점심을 넘겨서야 약을 드시고 빈봉지 사진을 또 찍는다. 때로는 저녁때까지 약이 남아 있기도 하고 어떤 때는 사진만 찍다 아예 약을 드시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제는 누가 빈 약봉지를 버리는 바람에 난리가 났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급기야는 약상자에서 옛날 봉지 하나를 찾아 그곳에 새로 날짜를 기입해서 사진을 찍으셨다. 이유인즉 늘 어딘가에 보고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오늘은 그걸 작품이라고 하신다. 약 드실 것을 재촉하니 작품을 만들어야 해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작품…… 헛웃음이 났지만 작품…… 그러나 통할 길 없는 세계를 향해 엉뚱하니 보고만 하다가 급기야는 작품이라 우기는 것이 그만의 일은 아니다 싶어 나는 황급히 웃음을 거두어야 했다. 만사 귀찮은 상태로 하루를 보내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혼자만의 작품 활동에 여념이 없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