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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씨앗”에 관한 부연

내가 쓴 시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사설 늘어놓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이 시에 대해선 조금 다른 방식으로 시도를 해보았다. 우연히 구글 바드 테스트하다 카카오 씨앗의 초기 버전을 올렸더니 시라고도 하지 않았고 해석을 부탁하지도 않았는데(심지어 제목도 빠트렸다) 시로 이해하고 나름의 설명을 하였다.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는데 우선 AI의 해설을 살펴보고 내 이야기를 덧붙일까 한다.

 

▲ 구글 바드의 해석

시 “카카오 씨앗이 향을 얻기까지“는 카카오 씨앗이 향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삶의 여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시입니다. 시의 화자는 몰타의 절경이 강풍에 무너져 내린 것을 보며, 바람에 의해 만들어졌다가 바람에 의해 사라져 버린 만남을 생각합니다. 화자는 ‘아주르 윈도우’는 사라졌지만 그 너머의 하늘빛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삶에서 사라져 버린 것들이 있더라도 여전히 아름다운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화자는 어느 날 남아 있는 책을 펼치다 책갈피처럼 꽂혀 있는 초콜렛 포장지를 발견합니다. 화자는 초콜렛 하나 사는 것도 녹록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어쩌다 먹은 초콜렛 한 조각 보다 더 짙은 미련과 아쉬움에 종이라도 남겨두곤 했었습니다. 화자는 초콜렛의 향기가 오래된 책 냄새 너머 속절없이 흩어졌지만, 짙은 빛깔은 여태 기억나지 않는 책의 알지 못할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에 고이 잠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삶에서 사라져 버린 것들이 있더라도 여전히 그 기억은 우리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화자는 카카오 빈이 향기를 얻기까지 대략 열 다섯 날이 걸린다고 말합니다. 이는 삶의 여정이 오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화자는 내 책꽂이 어딘가 또는 무한의 서가 어딘가 향기 깨울 바람뿐인 열 다섯 날 세월을 괴고 시간을 삭힌 아득한 천상의 열 다섯 날 너를 그리고 나 기다리던 그런 시절이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화자가 아직은 만나지 못한 영원을 기다리는 여정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 내 이야기

바드의 해설은 전반적으로 무난한 수준으로 하지만 소극적이고 피상적이다. 그럼에도 시가 지향하는 바는 일정 부분 파악하였다. 마지막의 “이는 화자가 아직은 만나지 못한 영원을 기다리는 여정에 있음을 의미합니다”에서 그것은 꽤 분명했다.(바드는 “녹록한”의 뜻을 몰랐다.) 이 시는 기본적으로 <다 녹은 초콜렛>과 비슷한 궤를 가지고 있다. 다만 20여년 전의 그 시에서 내가 말하지 못한 것을(또는 제대로 살리지 못한 부분을) 말하고 있음에서 의미를 달리한다. 완성도에 관해서는 물론 별개다.

 

몰타의 절경이 강풍에 무너졌다
‘아주르 윈도우’는 사라졌어도 그 너머 하늘빛은 변함이 없다
형상을 잃어버린 초콜렛의 맛처럼
오래도록 잊고 지냈던 책속의 초콜렛 포장지처럼

 

2017년 3월 10일에 쓴 글은 전날에 일어난 “아주르 윈도우 붕괴”의 기사와 관련된 것으로, 소소한 이야기 끝자락에 가벼운 마음으로 썼다. 그래서 나는 지난 6년간 게시판에 쓴 이 글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런데 한달 전에 문득 초콜렛 포장지와 그리움에 대한 시를 쓸 생각을 했고 그것을 찾는 과정에서 이 넉줄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나는 이 넉줄이 그 자체로 시가 되기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시의 한 부분이 될 수는 있으리라 생각했다. “님은 먼 곳에” 이래로 내가 가끔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17년의 글을 떼놓고 생각한다면 아주르 위도우가 사라진데 대한 나의 소감은 <다 녹은 초콜렛>에서 그러하였듯 형상보다는 본질에 의미를 둬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위태로운 삶과 존재에 대한 내 생각을 담은 것이었다.

 

어느 날 남아 있는 책 펼치다 책갈피인양 꽂혀 있는 초콜렛 포장지 하나를 발견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초콜렛 하나 사는 것도 녹록한 일은 아니어서 한 조각 초콜렛 보다 더 짙은 미련과 아쉬움에 종이라도 간직하곤 했던 것이다 찰나였다 순간이었다 오래된 책 냄새 너머 향은 속절없이 흩어졌으나 짙은 갈색의 포장지는 기억나지 않는 책의 알지 못할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에 고이 잠들어 있었다

 

초콜렛 포장지에 대한 두번째 이야기는 허망한 상실에 관한 것이다. 나중에라도 가능하다면, 이 부분은 더 줄였으면 싶다.

 

카카오 씨앗을 醱酵(발효)시켜 향을 얻기까지 대략 열다섯 날, 내 책꽂이 어딘가에서 무한의 서가 알 길 없는 한 모퉁이까지 세월을 괴고 시간을 삭힌 아득한 天上의 열다섯 날, 너를 그리고 나 기다리던 그런 시절이었다 風化―바람이 만들었으나 바람이 되어버린 風景에 대한 바람이었다 아직은 만나지 못한 永遠이었다

 

시를 쓰면서 나는 향이 없는 카카오 씨앗이 대략 15일의 발효 과정을 통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초콜렛의 향을 갖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보름의 시간을 찰나인지 억겁인지 티끌 같은 유한의 존재로서는 알 길 없는 천상의 열 다섯날로 연결시켰다. 그립고도 익숙한 향을 다시 만나는 날 말이다.

이 시는 <다 녹은 초콜렛>. <다음 이 시간에…>와 같은 그리움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오늘처럼 비루한 영원>은 그리움을 테마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상은 같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내 동생에 대한 절대 지워지지 않을 마음을 담고 있다. 다만 <다 녹은 초콜렛>과 달리 이 시는 내 모든 상실과 이별, 단절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과 재회의 시간을 기약하고 있다.

 

아직은 만나지 못한 永遠이었다

 

사실 이 시는 마지막 한줄이 전부다. 기본적으로는 구글 바드의 해석처럼 “화자가 아직은 만나지 못한 영원을 기다리는 여정에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비슷한 의미를 지닌 “<다음 이 시간에…>”와는 달리 이를 굳이 과거형으로 한 것의 의미까지 파악하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일이었고, 이것은  앞으로도 한참 동안 AI에게는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 문장이 과거형이 된 것은 모든 이별과 상실 너머 이어진 알지 못한 어떤 시공에서의 만남의 순간을 기정사실화 하는 것이기도 했고, 그것에 관한 터무니없고도 분명한 믿음, 어쩌면 불가능한 바람에 대한 어이없는 믿음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아직은 만나지 못한 영원”에는 물론 그리고 당연히, 당신도 있다.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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