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코엘료의 어설픈 우화에 대한 글쓰기에서 시작되었다. “꿈을 꾼 두 사람의 이야기”가 <천일야화>의 어디에 나오고 보르헤스와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여기저기 책을 뒤졌다. 그것은 351번째 밤이 아니라 범우사 버턴판 기준으로 그것은 352번째 밤의 이야기였다.
모처럼 “돈키호테에 어렴풋이 나타나는 마술성”에 관한 보르헤스의 글을 읽다 오래전에 찾아 헤맸던 602번째 밤에 대해 다시 확인하고 싶어져 책을 뒤지기 시작했다. 사무실에서 시작했으나 <만리장성과 책들>, 민음사 단편집 2권 등등에서는 내가 기억하는 내용 자체를 찾을 수가 없었다. 틀림없이 “돈키호테에 어렴풋이 나타나는 마술성”이 아닌 다른 글 또는 소설에서 셰헤라자드가 <천일야화>의 사연을 이야기하는 밤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는데 말이다. 웹상에서도 602번째 밤에 관한 언급들, 에세이들이 있었지만 보르헤스가 말한 ‘그 밤의 이야기’는 없었다. 사무실 천장의 누수는 멈출 줄을 몰랐고 캄캄한 책상 앞에 밤낮을 모르고 앉아 있었다.
집에 와서도 일은 계속되었다. 제일 먼저 범우사의 10권짜리 <아라비안나이트>에서 602번째 밤을 찾았으나 보르헤스가 말한 이야기는 없었다. 10권의 책 가운데 몇몇 내가 표시해둔 페이지들을 찾아 읽었으나 역시 없었다. 나는 틀림없이 그 밤의 이야기를 확인했다고 믿었는데 터무니없이 잘못된 기억이었다. 정말이지, 내 마음대로의 소설이었다.
허탈한 마음에 옆길로 빠져 창고 같은 방에서 <일본 미스터리 걸작선>을 찾아 헤매다 찾지 못했고 에드가 앨런 포의 4권짜리 책은 찾았다. 허수경의 에세이집 한권을 찾았고, 1988년 월간경향 별책부록 <신비의 명저>와 2001년 월간조선 별책부록 <시네마천국 600>도 눈에 들어왔다. 딘 R. 쿤츠의 책에서 “개에게 바치는 글”을 다시 찾아 읽고 싶었지만 그건 미뤘다.
다시 방에 돌아와 보르헤스 책들을 뒤적였으나 어느 대목이었는지 잘 생각이 나질 않았다. 내가 가진 보르헤스 책들을 살펴보다 보니 몇몇 책과 사본들은 한 사람에게서 왔다는 사실을 새삼 돌아보며 마음 한 켠에 쓰라림을 느꼈다. 그리고 “미로를 헤매이는 탐정”이라는, 또는 그 비슷한 번역자의 각주가 희미하게 생각났다. 그래서 박병규 번역본 <허구들>에서 서두에서 602번째 밤에 대한 보르헤스의 언급과 각주를 찾았고 “두 갈래 오솔길이 있는 정원”에서도 보았다. 그 밤은 셰헤라자드가 자신과 샤리아르의 이야기로 이야기를 하는, 미장아빔(Mise en Avyme)의 밤이었다. 보르헤스는 602번째 밤이라고 몇 번에 걸쳐 이야기했지만 602번째 밤에 그런 이야기는 없다.
민음사 번역본의 주석에는 보다 상세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역시나 속시원한 답은 없고 아마도 그것은 그의 상상으로부터 나와 <천일야화>의 어느 밤이 되어버린 이야기인 듯 싶다. 결국 <천일야화>에 그 밤의 이야기는 없지만 그 가운데 어느 밤에 그 이야기가 있고, 천일의 밤 전부가 그것이기도 하다.
“저는 천일야화에 나오는 어느 날 밤의 이야기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셰헤라자드 왕비가 천일야화의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반복하기 시작하는 밤의 이야기(마술에 걸린 필경사가 정신이 없어서 그랬지만) 말입니다. 이는 그 이야기를 했던 밤으로 다시 돌아갈 위험이 있으며, 그렇게 되면 끝이 없게 됩니다.”
/두 갈래 오솔길이 있는 정원
Then one day as the evening came
Sultan sends for him a wife
Choose her well, charms I wish to see
Bring her, send her in to me
Then came Scheherazade to his side
And her beauty shone
Like a flower grown
Gentle as he’d ever known……
/Song of Scheherazade, Renaissance(Excer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