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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은 꽃집 이야기

아파트 윗편 입구 쪽에 꽃집이 있었던 것이 얼마나 오래인지 모르겠다. 적어도 20년은 더 되었을 것이다. 부지런한 부부가 작고 허름한 가게에서 아침마다 화분들을 가지런히 내어놓고 저녁이면 또 다시 정리하고 문을 닫는 곳이다. 거의 창고처럼 보이는 이 꽃가게는 나름으로 오래된 아파트에 정취를 더해준다고 나는 생각하곤 한다. 옛날의 슈퍼도, 그 다음의 편의점도 지금은 결국 문을 닫았으나 꽃집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인아저씨는 무뚝뚝해 보였지만 이웃 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친구도 많아 보였다. 가끔은 저녁 시간에 꽃집 안의 작은 테이블에서 친구들과 맥주잔을 기울이는 모습도 드물지는 않았다. 아주머니는 친절하고 얌전한 분 같았고, 모르긴 해도 매일 오가는 나에 대해서도 좋게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해마다 벚꽃 피는 시절이면 꽃가게도 봄기운을 받았고 5월에도 손님들이 자주 북적였던 곳이다. 꽃집 아저씨의 아주 오래된 아반떼 승용차는 언제나 꽃집 건너편 길가에 주차되어 있었고 그 모습은 오래도록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작년 언젠가부터 아주머니가 보이질 않았다. 그럼에도 아무런 변화의 느낌은 없었다. 너무 오래 나오질 않다보니 그녀에게 무슨 좋지 못한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몇달이 지나도 보이질 않으니 어머니도 궁금해 하셨다. 평소 알고 지내는 곳이라고 해도 꽃집 주인아저씨께 물어보기는 또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묻지는 못했다고 하셨다. 그러고도 여전히 아주머니는 보이질 않더니 언젠가부터는 그분의 딸처럼 보이는 분이 주인아저씨를 도와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주머니가 중병에 걸리셨거나 어쩌면 돌아가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게는 이제 거의 확신처럼 느껴졌다. 꽃집은 변함없이 그대로였고, 어느 날엔가는 그 낡은 승용차를 처분하고 작은 SUV를 구입한 것인지 아반떼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아저씨의 행동이나 일과는 정말이지 달라진 것이 너무도 없어 짐작할 길이 없었다.

그리고 최근에 사연을 조금 알게 되었다. 역시나 수십년간 우리 동네서 야쿠르트 판매를 하고 계시는 분(‘프레쉬 매니저’라고 한다)이 계신데 어머니게 그녀의 안부를 물은 것이었다. 그분은 아파트 전체를 다니시고, 온동네 사람들과도 안면이 있어 누구보다도 동네 소식을 잘 알고 있었다. 그분 이야기인즉, 아주머니께서 어느날 집에서 주무시다 그대로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모르긴 해도 나와도 그렇게  나이 차이가 많지는 않을텐데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뒤에 있었다. 수십년을 함께 해 온 꽃집의 두 사람은 실은 부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집도 따로 있었다고 한다. 다만, 두 사람이 어찌어찌 마음이 맞아 부부처럼 지낸 것은 사실일지 모르지만 현실은 그런 것이었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아주머니의 죽음을 알게 된 것이 며칠간 아주머니 소식이 없어 걱정을 하던 친구가 집에 들렀다가 그녀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와 내가 놀랐던 것은 어떻게 주인아저씨는 며칠 일도 나오지 않는 그녀에게 연락조차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부부든 애인이든 그저 일 도와주던 분이든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에게는 전남편과 사이에서 낳은 아들과 딸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한 사람은 자신들을 버린 엄마라서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말하자면 “기가막힐 꽃집의 고독사”였다.

올해 벚꽃이 피고 지는 동안에도 꽃집은 여전하였다. 가게는 주로 한산했지만 가끔은 북적였다. 딸로 보이는 사람이 가끔 나와 일을 도와주고, 저녁에 화분을 들여놓을 때가 되면 주인아저씨의 친구로 보이는 분이 또 도와준다. 그 모든 일상에서 꽃집 아주머니만 사라졌을 뿐, 달라진 것은 없이 그대로 돌아가고 있다. 놀랍지만 어쩌면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들은 걸 들은 걸 다시 들은 이야기라 어디까지가 진짜인지는 모른다. 또 돌아가신 그분 쪽의 이야기나 항변은 전혀 알지를 못하니 또다른 반전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수십년간 오가며 보았던 것은 모두 껍데기였음에는 변함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당신이 보는 나도 물론 그럴 수 있음에 틀림없다.

 

 

/2023. 4. 6.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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