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소옥에겐 일이 없네

조오현 스님 시를 뒤적이다 <양귀비>를 보았다. 양귀비 하면 떠오르는 이름은 또 소옥이다. 스님의 시에도 소옥이 나온다. <적멸을 위하여> 136~137페이지에 있는 시, <양귀비 마음> 아래 부분이다.

 

들리는가 소옥 부르는
궁궐 안 큰 목소리

 

그런데 소옥에 달린 각주 145에는 소옥을 가리켜 양귀비의 별칭이라고 되어 있다. 내가 아는 한, 소옥은 양귀비의 별칭이 아니라 그녀의 몸종 이름이다. 소옥과 함께 등장하는 ‘님’에 대해선 설이 많다고 하더라도 소옥을 부른다는 것은 ‘님에게’ 또는 ‘님으로부터의’ 전갈을 상징하는 것이다. 궁궐 안 큰 목소리가 소옥을 불렀다는 것도 양귀비 부른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오조) 법연은 소염시小艶詩에서 이렇게 읊었다.

 

한 폭의 풍광 말도 못하겠네
동방 깊은 곳에서 애살 떨고 있는 모습이라니
자주 소옥을 부르지만 소옥에겐 일이 없네
다만 정인에게 알리는 소리일 뿐.

일단풍광화불성 一段風光畵不成
동방심처설수정 洞房深處說愁情
빈호소옥원무사 頻呼小玉元無事
지요단랑인득성 只要檀郞認得聲

 

무산 스님께서 법연의 깨달음을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누군가 원고를 정리한 사람이 그렇게 주석을 붙인 것이라 추측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소옥을 부른 것이 양귀비였든 현종이든 안록산이든, 견지망월見指忘月의 경우처럼 단순히 소옥을 부르려는 것이 아니었음은 확실하다.

이것은 케슬러가 말한 한걸음 비켜 있어야 한다는, 풍자에 대한 정의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見指忘月과 달리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보는 척 할 뿐이다.

소염(小艶)이란 처음 피려 할 때의 산뜻하고 아름다운 꽃송이를 뜻한다고 하는데 내가 구할 수 없는 일이고…… 지금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은 소염(小艶)이 아니라 어딘가의 쓰라림 달래줄 소염消炎, 소염진통제消炎鎭痛劑인 것 같다. 이 또한 손가락을 보는 척 보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이고.

 

 

 

/2023. 1. 30.

무치

데.호따.무치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