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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공동운명

우리는 승리를 얻을 수도 있고
재앙을 겪을 수도 있지만,
그 두 가지 허깨비를 똑같이 취급해야 해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난 금요일이었다. 모처럼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 이 친구와의 식사에 있어 나는 선택권을 전혀 갖지도 않고 사용하지도 않는다. 그가 음식점을 잘 아는데다 잘 아는 그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그랬다.

어제는 초량의 중국집과 송도의 어떤 식당을 내게 말했다. 내심 나는 모처럼 초량엘 가고 싶었지만 그가 송도를 가고 싶어하는 눈치여서 좋으실대로 하라 했더니 송도를 택했다. 모처럼 가보는 송도, 고등학교 시절 옛친구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어느 정류소에서 내려 한산한 골목길로 들어섰는데 다마스 한대가 서 있었고 우리를 보더니 도움을 청했다. 몹시 좁고 가파른 비탈길에 주차를 했다가 가려는데 한쪽 바퀴가 바닥에 닿지 않은 상태가 되어 헛도는 상황이었다. 운전자와 다른 한 사람이 있었는데 우리더러 뒷쪽 짐칸에 좀 타 달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두 사람이 타면 그 무게로 바퀴가 닿을까 기대하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친구는 그건 위험해서 안되겠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것이었다. 나는 좀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도와주고 싶어 좀 머뭇거리다 일단 앞에서 한번 밀어보자고 했다. 그런데 차를 윗쪽으로 올리는 일이어서 그런지 그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친구 말을 못들은 듯 뒤에 타서 한번 해보자고 했다. 친구는 여전히 내키지 않은 기색이었으나 분위기가 그렇게 돌아가니 같이 타는 것으로 되었다. 그런데 운전자가 뒷트렁크 문을 닫으려 해서 그건 내가 안된다고 했다. 혹시 갑작스레 차가 앞으로 튀어나가거나 문제가 생기면 뛰어내리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랬다. 사실 그런 순발력도 없는 사람이지만 뭔가 본능적으로 문 닫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운전자는 두 세번 트렁크를 닫으려고 했으나 극구 반대해서 열어둔 채로 시동을 켰다. 뒷쪽의 바퀴가 뜬 상태라 후진은 되지 않았지만 여러 사람이 탄 상태에서 몇번 전후진을 하다 보니 앞쪽의 작은 턱을 넘어 마침내 차가 빠져나왔다.

거의 10초 정도였을 그 짧은 시간, 차가 심하게 흔들릴 때 나는 친구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위험한 느낌이 들었고, 만약에 갑자기 차가 앞으로 튀어나가 제어불능의 상태가 된다면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싶었다. 친구의 판단은 조심스럽고 현명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순간에 대해 몇번, 겪었거나 상상한 적이 있다. 오래전 어느 겨울 어떤 술취한 아주머니가 사무실에서 좀 자고가면 안되냐고 했을 때 그분에게 열쇠를 맡겼던 적이 있었다. 아침에 갈 때 문 잠그고 우편함에 넣어두고 가면 된다고 하고서. 큰 돈은 아니었으나 돈도 있었지만 만약 내가 그걸 잃어버린다 해도 나는 후회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비슷한 일이 가끔 있었고 나는 (별것 아니지만) 늘 똑같은 생각 내지 선택을 했다. 지난 금요일에도 마찬가지였다. 친구가 옳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내가 틀렸고, 그래서 문제가 생겼다고 한들 나는 그걸 후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날 차에 탔던 네 사람 가운데 두번 째 사람 또한 운전자의 일행이 아닌 지나가던 이였다는 것에도 충분히 공감하면서 말이다.

송도의 낡고 오래된 식당에서 먹은, 처음 먹어본 대구목살이 나름 맛있었다. 그리고 모처럼 바닷가 벤치에서 커피 마시며 여유를 즐기다 돌아왔다. 그에게는 Eagles 베스트 앨범 CD를 하나 만들어줬다. 어느 노래 하나가 몇해 전 세상을 떠난 옛친구와 함께 이어져 있었던 까닭이다. 낮시간 내내 사무실은 비어 있었고, 환승까지 해가며 사무실로 돌아오니 그날 하루가 그냥 지나가버렸지만 그 점에 대해서도 나는 물론 어떤 후회도 없었다.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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