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엄 그린을 조금 좋아한다. 고3 시절 수험생으로서의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던 상태에서 읽었던 책 가운데 하나, <제3의 사나이>에 대한 당시의 매혹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그 소설을 읽는 내내 주인공 마틴즈처럼 가슴이 뛰었던 것을 기억한다.
문학상에 어울리는 작가는 아닐지 모르지만 심오하진 않더라도 한편의 멋진 영화(오손 웰즈가 나온 <제3의 사나이>처럼!)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요즘은 그의 두툼한 단편집 제일 앞에 실려 있던 <파괴자들>이 자꾸 생각난다.
꼬마들로 이루어진 윔즐리코먼 갱단’에 의해 처참하게 망가져버린 토마스씨의 집 때문이다. 나는 그 단편을 읽는 내내 몹시 불편했다. 그들의 파괴에 합당하거나 정당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제3의 사나이>의 해리 라임에게도 나름의 생각과 이유는 있었는데 말이다.
“죄송해요.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참을 수 없었어요, 토머스씨. 개인적인 감정은 없어요. 하지만 이건 우스운 일이라는 걸 인정하셔야 해요.”
<파괴자>들의 말미에 꼬마들은 그렇게 말했다.
나 또한 오늘의 많은 윔즐리코먼 갱단들이 벌이는 일들과 그들의 뉴스가 우습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꼬마 갱단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집집마다 벨 누르고 도망가기를 일삼던 내 열세살의 밤길처럼 뚜렷한 목적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어느 쪽으로나 우습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도 확실히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