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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를 쓴다는 꿈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요한복음 21-11

 

 

이창기의 <모나미 볼펜처럼>에 마음 갔었지만 모나미 볼펜을 좋아한 적은 없다
펜대는 너무 가늘고 0.7mm의 볼은 꾹꾹 누르지 않으면 필기도 잘 되지 않는다
게다가 몹시도 사무적이고 관공서적인 그 느낌이라니
나는 고장난 펜대에 몽당연필을 끼워 쓰기를 오히려 더 좋아했었나 보다
“돛대도 삿대도 없이 잘도 굴러먹던 시절”+ 같은 건 없었던 사람인지라
모나미 없는 인간이 모나미 볼펜마저도 비슷하게 취급하는 것인가 모르겠다
153이라는 모델명이 요한복음에서 왔다고 하더라만
백쉰세 마리가 아니라 한 마리를 채우지 못하고
찢겨나가는 어떤 이의 허접한 그물을 떠올리며
희망 없는 희망을 한줄 확인했을 뿐이다
잉크가 뭉친 것도 모나미 볼펜의 볼이 문제인 것도 아니라는 것
부인할 수도 없는 노릇, 그럼에도 여태 깨질 못하였으니……

 

굳어버린 생각의 끝자락에서
별똥별 같은 빛이 쏟아져내렸다

 

/2019. 12. 19.

 

+모나미 볼펜처럼, 이창기.

 

내가 시를 쓴다는 꿈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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