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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ie : 돌아가지 못한 밤

J. J. Cale, 1974.

 

 

케일은 이미 꿰고 있던 시절이었고, CD 앨범도 당연히 갖고 있던 때였다. 하지만 조빙의 몽롱한 브라질을 보고 들은 이래 내 마음은 온통 “질서와 진보”라는 구호가 새겨진 국기를 지닌 나라로 가 있었고, 오직 Garota de Ipanema가 내 곁을 채우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녀가 영국에서 잠깐 한국에 왔고 그때까지 두 사람 사이가 아주 어색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살짝 밤비가 내리던 밤이었다. 가디건이었거나 긴소매 티셔츠였거나 그랬을 것이다. 그녀는 지하철을 타고 와서 아무 말없이 옷 아래쪽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품속에서 레코드판 한 장을 꺼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앨범에 떨어진 약간의 빗방울을 소매로 닦아 내게 주었다. 품위도 없고 분위기도 없었지만 내 마음을 뭉클하게 하곤 했던 것, 그게 그녀의 방식이었다. 이역만리에서 내게로 전해진 LP 1장 ㅡ 하지만 그것은 이별의 선물 같은 것이기도 했다.

27장으로 이루어진 어느 씨디 전집이 그랬던 것처럼, 이후 10여년간 나는 그 앨범을 들은 적이 없었다. 오디오를 처분해서 들을 수도 없었지만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다 3년쯤 전에야 LP판을 꺼내어서 턴테이블에 올려보았다. 그녀가 내게 준 LP로 처음이었을 뿐, 수도 없이 내 귀를 마음을 스쳐 지나간 노래들 말이다.

<Okie>는 1974년에 발표된 케일의 세번째 앨범이며, Lynyrd Skynyrd는 그해 Call Me the Breeze를 리메이크하였고, 어쩌면 그녀가 태어났던 해일지도 모르겠다.

 

J. J. Cale, 1974.

 

Rock and roll Records, I got the Same old blues(역시나 리너드 스키너드의 리메이크가 더 많이 알려졌다)가 멋지게 들렸고, Cajun Moon도 놓칠 수 없었다. The Old Man and Me에선 뭔지 모르게 선문답 같은 느낌이 들었고, 가스펠 곡으로 알려진 Precious Memories는 케일에게 와서 느긋한 회상의 느낌으로 다가왔다. I’d Like to Love You Baby의 경우는 케일의 보컬 스타일이 잘 드러나는 곡이다. Anyway the Wind Blows란 제목은 Bohemian Rhapsody의 가사로 더 많이 알려져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케일의 곡이 먼저인 것은 분명하며, 꽤 미국적인 느낌이었다.(이 곡의 경우 빌 와이먼의 리듬 킹 밴드도 신나고 훌륭했다.)

앨범의 상당수는 내쉬빌에서 녹음되었고, 일부는 오클라호마 털사에 있던 케일의 집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Okie> 앨범은 전반적으로 컨트리 블루스의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여기 조금 다른 분위기의 짧은 곡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풍성하고도 환상적인 소리를 들려주는 Starbound였다.

이 노래는 내가 보았던 두 시절의 밤하늘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는 제대를 한 후 같이 근무했던 동료와 함께 한달 가량  산사에 머물고자 갔던 때였다. 거창 깊은 산골에서 첫날밤 보았던 그 많은 별들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또다른 ‘별밤’은 열셋, 열넷의 여름방학 때 고향 강둑에 누워 친구들과 바라보았던 밤하늘이다. 그게 정말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작은 크기에도 한참 또렷한 은빛 구체가 아무런 소리없이 천천히 밤하늘을 가로질러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던 때다. 나는 그것이 상당한 크기의 통신위성(‘에코’ 같은 것)이 아닐까 상상하기도 했다. 그 발광체가 무엇이었든 여름밤 친구들과 함께 바라보았던 그날의 별빛은 지금도 내게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2분이 채 되지 않는 노래에 담겨 있는 어떤 이들의 삶과  기억, 그리고 그 삶이 속한 세상…… 케일이 떠났던 해 누군가 아무 말없이 내게 Starbound의 유튜브 링크를 보내온 것을 기억한다. 시간은 흐르고 또 흘러 내게 <Okie> LP를 전해준 사람도, 케일의 부재를 제일 먼저 알려줬던 사람도 소식조차 모르는데 Same old blues는 여전히  흐르고 있다.

케일의 숱한 노래들처럼 느긋하지 못한 채 씁쓸하고 씁쓸하고 또 씁쓸하지만 그것은 어찌 못할 나의 Precious Memories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이 수록된 LP는 그녀의 품을 떠나 내게로 왔고, 나 또는 그녀도 비슷하게 떠났다. <Okie>의 어느 트랙에선가 LP는 튀면서 반복되곤 하지만 그 휘황했던 별밤으로 돌아갈 길은 없다. 흘러간 옛노래 같은 것도 물론 없다.

 

 

/2021. 8. 무치.

 

무치

데.호따.무치

2 thoughts to “Okie : 돌아가지 못한 밤”

  1. 케일의 곡들은 정말 나른하면서 느릿느릿함의 미학이 있죠.
    오랫만에 케일의 곡을 듣습니다.

    밤하늘 하니 예전에 산사 음악회에 갔던 기억이 있어요.
    장사익씨도 나왔었고 멋있는 공연이었죠. 중간에 이벤트인지 무언가를 했었는데 모든불을 다 끄는거였어요.
    그때 하늘의 별들이 내 머리위로 다 쏟아지는것 같았지요. 도두 와~~~ 하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때의 별들이란. … 어디 있다가 나타나는것일까.

    옛 기억도 떠올리고 간만에 케일곡도 듣고 너무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감ㅅㅏ합니다.

    1. 단어 그대로 ‘laidback’케일이지요.
      데뷔 앨범에서 after midnight을 노래할 때도 그랬고, 시종일관이었습니다.
      그 유유자적과 여유, 태연함 같은 것이 몹시 부족한 사람이건만
      음악이 그런 쪽으로 딱히 내면의 비타민이 되지는 않는 것인지
      나 자신 약빨이 없는 사람인지 조금 서글픈 생각도 듭니다.

      깊은 산골의 별밤은 정말 장관이지요.
      콘서트에서 그랬다면 더 생생하고 멋진 순간이었겠습니다.
      시골의 밤에도, 도시의 밤에도, 심지어 낮에도 있는데
      보이지도 않고 닿지도 않고……
      이렇게 말하면 꼭 별들만 그런 것도 아닌가 싶어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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