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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태양 검은 빛, 마리아 베따냐

Maria Bethânia
Maria Bethânia, 1965.

 

노래하지 않고
노래할 것을
더 생각하는 빛

눈을 뜨지 않고
그 눈을 고요히 감고 있는 빛……
/검은 빛, 김현승

 

조앙 질베르뚜가 만들어낸 상큼한 리듬과 안또니우 까를루스 조빙의 단순하면서도 유려한 멜로디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던 시대, 보다 심각한 방식으로 쌈바를 노래한 앨범이 잔잔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앨범에 새로운 노래는 거의 없었지만 그녀는 시작부터 새로운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콜비츠를 연상케 하는 재킷 디자인을 지닌 이 앨범에서 그녀는 조앙 두 발레, 바따찌야, 까를로스 리라, 노엘 호자 등의  오리지널을 전혀 다른 음색으로 노래하였고, 넬쏜 곤쌀베스의 노래를 따라 그녀의 이름을 지어준 오빠 까이따노 벨로주도 거기 포함되어 있었다. 수록된 12곡의 노래 각각에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 같아 조금 자세히 살펴보려 한다.

 

1. De Manhã
2. Só Eu Sei
3. Pombo Correio
4. No Carnaval
5. Nunca Mais
6. Sol Negro
7. Missa Agrária / Carcará
8. Anda Luzia
9. Feitio de Oração
10. Feiticeira
11. O X do Problema
12. Mora na Filosofia

 

마리아 베따냐의 음악적 여명/여정은 De Manha(아침에)로 시작한다. 찬찬히 들어보면 나름 괜찮은 곡이지만 첫소절에서 나는 뭔지 모를 불편함을 느끼곤 했다. So Eu Sei는 바따찌야(‘작은 감자’라는 이름을 쓴 쌈비스따 ㅡ 그에 관해서는 언젠가 다시 다룰 것이다)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베따냐가 보다 드라마틱한 스타일로 노래했다. 고단한 삶에서 노래가 지니는 의미는 오직 노래하는 ‘나’만 알고 느끼는 것일까?

리듬은 경쾌하고 플룻 소리는 풋풋한데 사연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는지 Pombo Correio(전서구傳書鳩, homing pigeon : 메시지를 보낼 때 사용하는 비둘기)에는 어찌 못할 슬픔이 배어 있고, No Carnaval(카니발에서) ㅡ 그녀는 전혀 즐겁지가 않다.

하지만 그녀의 슬픔은 남다른 빛깔을 지닌 듯, 까이따노 벨로주가 곡을 쓰고 갈 꼬스따가 함께 노래한 Sol Negro에는 처연한 아름다움이 있다. 낮고 굵은 베따냐의 목소리(검은 빛!) 사이로 갈 꼬스따의 가녀린 보컬이 애잔하게 들려온다. 바다와 사랑의 여신 예만자의 품으로 떠나버린(세상을 떠난) 누군가와의 이별 이야기다.

이어지는 Nunca Mais는 오케스트레이션/트럼펫 솔로와 함께 편안한 재즈 쌈바 스타일을 만들어낸다. 그럼에도 그것은 버터맛이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게츠/질베르뚜와는 결이 다른 느낌이다, 사실은 Nunca Mais, 네버!

Anda Luzia는 장중한 느낌의 행진곡 같고, 커버 디자인과 어울리는 프로테스트 송 Carcara는 나라 리오의 모던하고 프레쉬한 분위기에 비해 한참 무거운 느낌을 준다. 음악으로만 치자면 나라 리오에 끌리지만 애초에 작곡자가 ‘매의 눈’으로 바라본 브라질의 문제들은 베따냐로 하여금 보다 진지한 접근 방식을 택하게 했을 것이다.

 


젊은 날 마리아 베따냐의 모습이 담긴 필름, 1966.
두 청춘의 순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줬던 피에르 바로의 다큐멘터리에서 그러하였듯,
그녀는 비슷하게 밝고 풋풋하였다.

 

노엘 호자의 쌈바 Feitio de Oração은 기도자의 모습과 쌈바 리듬을 보다 더 진지하게 연결시키려는 듯 느릿하게 불렀다. 애조띤 동화처럼 들리는 Feiticeira(여자마법사)는 우리 가요 “인어 이야기”를 생각나게 한다. 이 노랠 듣노라면 마법을 잃어버린 것은 그녀가 아니라는 서글픈 심정에 빠지곤 한다.

이어지는 O X do Problema는 상큼한 플룻 연주와 함께 비교적 밝고 경쾌한 느낌이며 마지막 곡 Mora na Filosofia는 보다 전통적인 쌈바 리듬으로 시작하지만 곡 자체는 앨범의 전반적인 느낌을 그대로 반영하듯 느리고 어둡다. 제목처럼 ‘철학적인 삶’ 속의 쌈바여서 그런가 모를 일이다.

 


소사와 마리아 파란투리가 함께 노래해도 오리지널을 이기기는 쉽지 않았다.

 

앨범 자켓처럼, 마리아 베따냐의 묵직한 음색처럼 그녀의 데뷔 앨범은 전반적으로 느리고 어둡다. 하지만 그 속 여기저기를 날렵하게 떠도는 영롱한 어떤 빛을 나는 느끼곤 한다. Sol Negro처럼 결코 눈부시지 않은 빛, 김현승의 마지막 연처럼 “붉음보다 더 붉고 / 아픔보다 더 아픈 / 빛을 넘어 / 빛에 닿은 / 단 하나의 빛“……

그것은 마리아 베따냐의 세계이며 내가 속하고픈 세상의 풍경이기도 하다. 한순간에 흘려버리면, 잠시잠깐 외면하고 지나쳐버리면 좀처럼 찾기 힘든 빛이다.

 

 

con Ella……
/2021. 8. 무치.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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