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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의 안부

우리 다섯 손가락 가운데 하나를 잃고 망연자실해 있던 때였다.
정리를 하느라 미국엘 갔을 때 이런저런 인연으로 알고 계시던 분께서
콜로라도에 있는 별장의 열쇠를 주셨다.
혹시라도 콜로라도에 가게 된다면 내 집처럼 사용하라고 하셨다.
그런 마음이 큰 위로가 되던 시절이라 나는 돌아와서 아버지께 말씀을 전해드렸다.
1년에 6개월씩 눈이 내린다는 그곳,
콜로라도의 달 밝은 밤을 우리가 찾을 일 무에 있었겠냐만
아버지는 내가 잘 갖고 있는지 열쇠의 안부를 가끔 묻곤 하셨다.
사실 그 전에도 아버지는 콜로라도의 열쇠 하나 직접 받은 적이 있었고
그건 어디 두셨는지 잊었는데 내가 또 하나 받아온 것이었다.
콜로라도의 강물이 태평양을 돌고 돌아 다시 흘렀을 시간 동안
안부를 묻는 일이 점점 뜸해지더니 이제는 십여 년 동안 내게 물은 적이 없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도 그 열쇠가 어디 있는지 이제 알지 못할 만큼이다.
하지만 한때 열쇠의 안부를 안다는 것은 열쇠 그 자체였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콜로라도의 깊은 산골
모닥불 타오르는 멋진 산장에서의 경이로운 꿈의 시간이었다.
그리움으로 기다린다던 그 강물이 세상을 돌고 돌아 다시 올 시간 동안
남은 모든 손가락들은 열쇠의 안부를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잃어버린 손가락도 분명 그러할 것이다.

 

 

/2021년 2월 1일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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