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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한 나의 균열

아마도 기원전 1508~1458년 사이, 18왕조의 다섯번째 파라오 하트셉수트 여왕 시대 아스완에서는 거대한 오벨리스크 제작이 시도되고 있었다. 오벨리스크는 작은 창, 꼬챙이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 오벨리스코스에서 온 것으로 이집트 사람들은 테크헤누라 불렀다고 한다. 만약 그것이 완성되었더라면 대략 높이 42미터, 무게는 1200여톤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단 하나의 철벽 같은 바위, 또는 단 하나의 바늘. 바닥을 제외한 대부분이 떼내어져 가던 어느 메마르고도 위태로왔던 날, 바위에는 치명적인 균열이 발생했고 결국 제작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틀림없이 최고의 오벨리스크가 될 수 있었던 바윗덩이는 허무한 꿈의 증거인양 3,500여년을 꼼짝없이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세워지지 못한 오벨리스크를 방문하며 저마다 사진을 찍고 감탄을 한다. 사람들은 이집트의 석공 같은 집요함으로 이 거대한 파멸을 헤집어내고 또 바라본다. 때로 만들어지지 못한 무엇인가가 그대로 역사가 되고 작품이 되고 꿈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하지만 멀쩡히 서 있어도 눈길 하나 가지 않는 세상의 숱한 풍경들, 쓰러지지도 빛나지도 못한 어느 하찮은 꿈이 깊고 유구한 균열을 잠시 들여다 보았다.

 

/2020. 11. 13.

 

 

 

 

무치

데.호따.무치

4 thoughts to “얄팍한 나의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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