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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taph

괜찮아
그냥 단어들일 뿐이야
물로 쓴……+

 

세상의 숱한 묘비명들 가운데 딱히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은 없다. 킹 크림슨의 Epitaph처럼 Confusion이 내  Epitaph이 될 수도 없다. 존 키츠의 묘비명에 깊이 공감하였고, 묘비명은 아니었지만 “Ames Point”라는 이름이 붙은 표지석을 나는 기억한다. 눈물이 앞을 가렸던 2000년의 여름, 위스칸신의 위네바고 호수 제방 끝자락에서 인상적인 문구를 읽었으나 나는 제대로 기억할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최근에서야 작은 동판에 새겨진 글 전부를 알게 되었고 거기 새겨진 궁금했던 한 줄은 아래와 같다.

“I’ve fished out Miller’s Bay and it’s time to go.”
“생각하는 물”이라는 뜻을 지녔다는 위네바고 호수의 어디쯤에 밀러 베이가 있는지, 로버트 P, 에임즈라는 사람이 어떤 생을 살았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은 정말이지 군더더기 없는 멋진 (작별)인사였다.

한하운의 <何雲 하운>은 시로 만들어진 회한의 Epitaph이다. 무엇보다도 묵직하고 절절하다. 시 전체가 강렬하지만 마지막 넉줄이 내 것이었다면 나는 그 불가능한 처연함을 마음에라도 옮겨서 새기고 싶다.

 

(…… 전략……)

썩은 육체 언저리에
네 헒과 균과 비(悲)와 애(哀)와 애(愛)를 엮어
뗏목처럼 창공으로 흘러 보고파진다.

아 구름되고파
바람이 되고파
어이없는 창공에
섬이 되고파.

 

사실 내게 묘비명 따위는 전혀 필요 없다. 알지 못할 언젠가의 무덤 같은 것도. 내가 세상에 없는 날이 온다면 그건 내 민망한 육신이 더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깡그리 잊혀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내게 있어 ‘적당히 깔끔한 증거인멸’ 같은 묘한 쾌감을 상상케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간직할 묘비명이라면 전혀 멋지진 못해도 분명한 것이 여기 있다. 오래 전부터 나는 그렇게 느끼며 상상했고, 내 모든 글이며, 마음이며, 어떤 삶 그대로임에 의심치 않는다. 허공에 씌어진 Epitaph이다.

 

불가해한 많은 것들을 이해하기를 사랑했지만
스스로는 거의 이해받지 못한 어리석은 이 여기에.

 

 

+
영화 <패터슨>.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이름을 가진 자 여기 잠들다 Here lies one whose name was writ in water, 존 키츠.
묘비명에 대해선 예전에 다른 방식으로 이미 썼었다. : 오독오독오도독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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