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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이 무엇인지요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그게 만화책에서 봤던 마법사의 주문이 아니라 정구업진언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을 적에는 그저 우스웠지요. 하지만 입으로 지은 업을 씻는 진언이라니 끝까지 웃을 일은 아니었지요. 생각해보면 수십년, 흐리멍텅한 업을 지니고 살아왔지요. 10대적부터 막연히 시를 쓰고자 했으나 내내 형편없는 것들만 그렸습니다. 아마도 수십곡, 20대 초반에는 노래도 지었지만 하나같이 어설픈 잡곡이었지요. 업이랍시고 편집일도 하고 조판일도 하고 인쇄일도 하고 더 하찮은 것들도 했지만 제대로 돈을 번 때는그리 많지 않았지요. 그러니 내게 있어 업이 무엇인지는 늘 답없는 이야기였지요. 아침, 점심, 저녁 빠짐없이 설거지를 하는 날도 많았습니다. 아이들을 돌보며 내 업은 무엇보다 가정주부라 생각도 했지요. 설거지를 하면서 죄와 속죄에 관한 시를 그리기도 했지요. 절반쯤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으니 절반쯤 자식들 데리고 살고 있으니 절반쯤 자식으로 살고 있으니 그들 일 살피느라 시간 보낼 적에는 부모가 업이고 자식이 업 같기도 합니다. 오늘 사무실엔 그다지 일이 없습니다. 오신다던 손님이 찾아 오실지도 알 수 없네요. 그러니 업이라고 하기엔 참 모자라기 짝이 없지만 그래서 이게 바로 업인가 싶어집니다. 지은 업이 넘쳐나고, 풀지 못한 업은 끝이 없으니 진언 따위는 알지 못해도 수리수리수리수리 고치고 업데이트 해야 할 내 분명한 업인걸요.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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