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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

: 와이어리스의 저주, 저주받은 와이어리스

 

 

 

작년 초가을쯤, 누군가 내 시집을 궁금해 했다. 나는 그걸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그건 저주받은 시집이라고 말했다. 순전히 내 입장이라면 몇가지 다른 이유들을 갖다붙일 수도 있겠지만 그때 말한 것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허술한 글들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고, 다른 하나는 정말이지 끊어져버릴까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만약 그 시집을 받는다면 그 당사자는 머지 않아 나와 끊어질 가능성이 극도로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농담처럼 웃으면서 “그래도 괜찮다면……” 했더니 고개를 저었고 나는 시집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다 무형의 시집은 괜찮지 않을까 싶어 pdf 파일로 시집을 만들었다.(옛 시집은 아니고 ‘칼리지’ 어딘가에 올려져 있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 나름 공을 들여 편집을 했고(제목도 물론 다르다) 앞쪽의 빈 페이지에는 한줄의 인사글을 쓰고 스캔해서 넣었다. 받은 사람은 기뻐했고 자신의 카톡 프로필에 그 페이지를 올려놓기도 했다.

하지만 저주에 관한 나의 느슨한 생각은 오산이었다. 무형의 파일에도 그것은 똑같이 작동하는 것이었을까…… 그로부터 두어달도 지나지 않아 ‘와이어리스의 저주’가 위력을 발휘한 것인지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연결은 완벽하게 끊어졌고 상황은 영영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제 와서 말하자면, 내가 직간접적으로 오래도록 알았던 사람 가운데 그 시집을 전해준 바로 그 만남 이후로 보지 못하거나 연결이 끊어진 사람들을 나는 꽤 많이 기억한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투탕카멘의 저주가 (그것이 실재한다고 하더라도) 제 1번 당사자인 발굴자 하워드 카터에게는 미치지 않은 것처럼 모두에게 작동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게 있어 그건 지극히 높은 확률을 가지고 있음도 안다. 와이어리스의 저주가 투탕카멘의 미심쩍은 전설을 넘어 내 많지 않은 가녀린 인연들에 면도날 깃털로 이루어진 단절의 날개를 펼쳐 어떤 관계를 무참하게 끊어버리고, 훨훨 날아가게 만드는 것일지도.

하지만 그 저주의 본질이 시집이 아닌 것 또한 나는 분명히 안다. 진정한 이유는 칼날 같은 와이어리스의 마음 그 자체라는 것, 그 어떤 이의 부족함과 심적인 문제들, 치명적인 결함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더더욱 시집의 저주를 아무도 깨닫지 못한 전설처럼 믿고 싶어지곤 한다. 저주는 그토록 두렵고 강력한 것이지만 투탕카멘의 저주에 대한 세상의 애매한 믿음처럼 와이어리스의 저주 또한 진실이기를 바라곤 하는 것이다.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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