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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더 론리 피플

어릴 적에 출근하는 아버지 따라 시장통 골목 끝집에서 나와 재미없는 학교를 향해 길을 나서면 가게에서 라디오 소리가 들려왔다. 제목도 몰랐는 그 곡의 현악기 소리는 이상하게 마음을 긁고 지나가는 듯 했다.

4층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는 모친이랑 연배가 많이 차이가 나지는 않은 것 같다. 언제나 같이 오고 가며 지내던 그분들 부부. 한번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아파트 안에서 걸어가는 내게 냅다 경적을 울려서 굉장히 불쾌했던 순간도 생각이 난다. 이후로도 인사를 하기는 했지만 그저 시늉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정정해보였던 그집 어르신이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혼자가 되셨다. 이후로 그분은 모습은 정말이지 쓸쓸해 보였다. 모친도 한번은 각별히 위로의 말씀을 전하셨다. 이후로 그분 보면 좀 더 따뜻하게 인사를 드리곤 하지만 그분은 한참 더 말씀도 많이 하시고 미안할 정도로 반가워 하신다.

약간의 장애가 있는 아들과 딸을 둔 오래된 이웃도 계신다. 유명한 서예가의 며느리였건만 그분의 삶도 편치는 못하셨다. 아들은 결혼도 못한 채 어머니 곁에서 살았고 딸은 결국 친정으로 돌아와야 했다. 어쩌다 길에서 나를 만나면 무척 반가워 하시고 어른들 안부도 꼭 물으신다. 나를 붙잡고 끝도 없이 말씀을 하지만 나는 억지로 거기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한두해 전엔 그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 조금만 달리 태어났더라면 참 총명했을 사람은 어느 하루 허망하게 가버렸고 나는 이후로 그분을 뵌 적이 없다. 뵙지 못한 것이 다행이라 싶은 생각도 가끔은 든다.

일로 해서 알게된 아주머니 한 분은 늘상 집안 일을 말씀하신다. 그분 어르신도 잘 알고 있으니 안부를 묻지만 아주머니의 수다는 끝이 없이 이어진다. 치매이신 어머니와 까다로운 아버지를 홀로 모시려면 보통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오늘 몇달만에 뵈어서 인사를 드리자마자 정신이 없을 정도로 그간의 사건들을 축약해서 말씀하신다. 나는 그저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쌀알을 줍거나 양말을 깁고 먼지를 터는 대신 어떤 이는 어디서나 일어날 법한 삶의 하찮은 한 구석을 이렇게 구구절절 글로 옮긴다. 그는 그렇게 하루를 보낼 것이고 누군가 비슷한 눈으로 그를 바라볼지도 모른다. 알지 못하지만 그릴 수 있는 그 눈매 또한 외롭고 쓸쓸하여 누군가의 마음을 긁고 지나간다.

 

 

 

 

 

2020. 5. 20.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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