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지요, 그리고 해가 지지요. 그리고 또 뜨지요, 그러고는 또 지지요…
붉은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떨어져 가는 동안, …
당신, 기다릴 수 있겠어요?”
/열흘 밤의 꿈, 나쓰메 소세키
세상만사 관심 갖고 싶은 것이 자꾸 없어져간다. 그런데도 뭔지 모를 갈증과 뭔지 모를 궁금함에 기웃거리다 요즘은 오디오북을 자주 듣는다. 처음 오디오북을 알게 된 것은 아이팟 초기 시절이었으니까 아마도 2001, 2년쯤이었지 싶다. 하지만 그때의 오디오북은 전부 영문 파일들이었다. 당시에도 아이팟에서 속도조절을 해가며 들을 수 있는 것이 좀 신기했었다.
그러다 작년부터 이런저런 파일들을 찾거나 (유튜브로부터) 추출해서 듣게 되었고, 최근엔 운전하면서도 그랬다.(음악 듣는 것보다는 차분히 운전할 수 있었다.) 최근에 들은 것은 나스메 소세키의 <몽십야>와 마르케스의 단편이었다.
소세키의 몽십야는 내가 10살 아니면 11살 쯤에 갖고 있었던 <소년세계문학전집>의 마지막 한권이었던 <도련님>의 뒷편에서 읽었던 것이다. 어린 나에게 이야기는 좀 놀랍고 두렵고 충격적인 내용이었고(제목도 내용도 가물가물하지만 내가 교과서에서 읽었다고 믿는 책상 서랍속 꽃씨들의 환상적인 이야기와 함께), 그 책은 20대 초반의 내게도 새삼스레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어린 날의 문학전집 가운데 이 책만은 내 책꽂이에 남아 있다. 오디오북으로 ‘들은’ <몽십야> 가운데 ‘첫째밤의 꿈’은 처음 듣는 이야기인양 질책인양 마음을 아프게 하고 부끄럽게 했다.
그리고 떨어진 별 조각을 주워 와, 흙 위에 살짝 올려놓았다. 별 조각은 동그랬다.
오랫동안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동안 모서리가 닳아 반들반들해진 것 같았다.
가슴에 안아 올려 흙 위에 놓는 동안, 내 가슴과 손이 조금 따뜻해졌다.
/열흘 밤의 꿈, 나쓰메 소세키
마르케스의 단편 <눈 속에 흘린 피의 흔적>에서도 아픔을 느꼈다. 이 단편 역시 내가 갖고 있는 그의 단편집에 수록된 것인데 10여년 전에 읽은 것이라 가물가물했다. 이야기는 <난 전화를 걸려고 온 것 뿐이에요>와 꽤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쉽사리, 기구하고도 어이없게 어떤 불가항력 앞에 내던져진 빌리 산체스의 사연이 남일 같지 않았다. 결국엔 삶 자체의 ‘피투성’이 그런 것이겠지만 말이다.
새하얀 백합이 코끝에서, 뼈 속에 스며들 만큼 진한 향기를 풍겼다.
그때 아득히 먼 위에서 툭 하고 이슬 방울이 떨어져, 꽃은 그 무게에 흔들렸다.
나는 고개를 앞으로 내밀어, 차가운 이슬이 맺힌 하얀 꽃잎에 입을 맞추었다.
백합꽃에서 얼굴을 떼면서 문득 먼 하늘을 바라보니, 새벽 별이 단 하나 깜박이고 있었다.
‘벌써 백 년이 된 거였구나.’ 그때야 비로소 깨달았다.
/열흘 밤의 꿈, 나쓰메 소세키
/2020. 4.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