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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진 전부 상상

아래의 가릭 이고르 슈카체프의 경우도 그랬지만, 브라질, 쿠바/멕시코 등을 돌아 이스라엘, 이란, 알제리 등등으로 흘러가서 베리 사카로프, 달레르 나자로프, 모흐센 남주, 그러다 페랏 이마지겐(?)에 이르러 그들의 문자(카발리에 문자?)를 보면 거의 암호 같은 느낌에 맞딱뜨린다. 겨우 제목의 발음 내지 뜻이나 알면 다행, 아니면 그저 느낌만 있을 뿐이다. 얼마전 샌디에고서 음악에 상당한 조예를 지닌 분을 잠깐 만났다. 그는 내가 관심가져 듣는 나라의 아티스트들 이름을 물었지만 나는 거의 말할 수가 없었다. 어떤 이름은 기억해낼 수 있었지만 다른 것들은 얼른 떠올릴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게 큰 문제라 생각한 적은 없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내게 가져다준 어떤 정서, 느낌들이 내 안에 있음을 안다. 그리고 때로는 거의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상상하는 것이 나같은 사람에겐 더 짜릿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내게 있어 ‘미지’란 그런 것이다. 오늘은 에프랏 벤 주르의 어떤 노래를 들었다. 하바 알버스타인의 1970년대 노랠 다시 부른 것인데 노랠 들은지는 몇해 되었지만 나는 아직 그 노래 제목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뜻도 물론. 하지만 그  노랠 듣는 동안 묘한 향수에 휩쓸리곤 한다. 마음 한 구석을 콕콕 찔리는 듯한 느낌, 내게 있어 ‘미지’란 그런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찾아봤다. 할라일라 후 쉬림. 번역기가 풀어낸 벤 주르의 노래 가사 한줄은 “yes, sometimes, tonight is beautiful songs“였다. 그리고 좀 더 살펴본 보다 정확한 번역은 “yes sometimes, the night is pretty songs”였다.)

 

/2020. 1. 21.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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