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붕대 감은 팔로 넘어지는 것을 보는 순간
마치 자기 몸이 당하는 고통처럼 느껴졌었다./1984년
스무살 즈음에 쥴리아 하면 떠오르는 몇몇 이미지들이 있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1984년>에서 ‘청년반성동맹’의 상징인 진홍색 허리띠를 두른 채 텔레스크린 앞에서 윈스턴 스미스에 어떤 쪽지를 전해준 젊은 여자의 이름이다. 거기 적힌 짧은 문장을 본 순간은 그의 운명을 바꾸었고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은 것이었지만 내 삶에 있어서도 틀림없이 그랬다. 마치 내가 그 쪽지를 받기나 했던 것처럼.
거기에는 멋없이 커다란 글씨로 이렇게 써 있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1984년
그리고 핑크 플로이드의 julia dream을 잊지 못한다. 그 노랠 처음 들었을 때 나는 <1984년>의 쥴리아와 황금의 나라를 먼저 생각했다. 황금의 나라에서 만난 쥴리아, 황금의 나라의 꿈…… 그런 것들. “am i really dying?”이라는 마지막 가사에서도 그랬다. 좌우 채널을 오가는 신쎄사이저 효과음들을 들으며 그릴 수 없는 것들을 그리고 또 그렸다.
비틀즈의 쥴리아는 실제로 자주 들었던 곡은 아니다. 아마 내 아이팟에도 이 노랜 없지 싶다. 학창시절 어떤 회사의 판촉물로 나왔던 카세트 테잎에서 배한성이 낭송한 쥴리아의 가사를 들으며 그토록 듣고 싶어했던 노래였는데 말이다. 물론 아이팟에 넣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 필요성은 별로 없었다. 어떤 노래들은 꼭 듣지 않아도 마음에서 플레이시킬 수 있다고 믿는데 이 곡이 그렇다. 단순한 가사지만 느낌은 절절했고 나는 그 가운데서도 “just to reach you”라는 대목을 늘 좋아했다. 그래서 이작자 여인숙의 “잠만 자는 방”에도 그 대목을 넣었다. (‘잠만 자는 방’의) 꿈이 아니라면 도달할 길도 없다 생각했기에.
그리고 최근 들어 화이트 앨범의 노랠 다시 생각하곤 한다. 텔레스크린 앞에서 받은 쪽지를 내내 주머니 속에 넣어뒀다 몰래 펼쳐보던 윈스턴 스미스에 대해서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실없는 주절거림들이 무엇을 향하고 있었던가를 생각하면서.
하염없는 꿈이었네,
4월의 꽃처럼 스러졌네,
눈짓으로 말과 꿈으로 흔들어
내 가슴 앗아갔네./1984년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나는 파코 이바네스의 palabras para julia로 내 마음을 대신하고
시간을 거꾸로 돌려가며 아무도 없는 진리성의 복도를 홀로 서성대고 있다.
half of what i say is meaningless
but i say it just to reach you julia……/julia, beat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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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2월, 타임즈의 커버스토리에 이 두 줄이 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