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역전에서 누가 묻는다면 제일 좋은 퇴치법은 “스미마셍”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무튼… 내게 그렇게 물었던 청년들에겐 ‘스미마셍’한 일이지만 도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심지어 <물리학의 도>에도 꽤 관심이 컸던 시절이 있었다. 그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물리학에 매혹된 것일 뿐이었지만.
<코스모스>에서 시작된 관심은 프리초프 카프라에 이르러 좀 폭발적으로 되었고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를 알게 되면서 더욱 매혹되었다. 하지만 ‘교양과학’으로 이해하기에 양자론은 내게 있어 일정 부분 불가해의 세계이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은 이래저래 가늠키 힘든 심심미묘한 불법 쪽이 차라리 편하겠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마음이 기울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카프라의 책에서 읽었던 네줄짜리 문장은 너무도 인상적이어서 암기력이 젬병인 내가 지금껏 외우고 있을 정도다. 단어나 조사의 차이가 조금 있을지 모르지만 내용은 아래와 같다.
우리는 수천 칼파 이전에 헤어졌지만
한번도 떨어져본 적이 없소.
우리는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대고 있지만
한번도 만난 적이 없소.
/대등선사
we were parted many thousands of kalpas ago,
yet we have not been separated even for a moment.
we are facing each other all day long,
yet we have never met.
/zen master daito
이 말을 한 주인공이 ‘대등선사’로 되어 있었기에 최근 들어 구글링을 통해 영문으로도 읽어봤고, 대등선사(대등국사)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좀 찾아봤다. 아마도 일본에서 大燈国師대등국사라고 부르는 이가 그분인가 싶은데 그는 Daitō Kokushi, 1282년에 태어나 1337년에 입적한 일본의 고승으로 카프라의 인용에서 유추해볼 때 그의 말을 들었던 이는 당시의 천황이었던 고다이고(後醍醐天皇, 1288~1339)로 추측된다.
불법의 근본이란게 텅비고 성스러운게 없다거나 수많은 양의 보시에 딱히 공덕이 없다던 양무제를 알현한 달마의 이야기에 더한 무게감(또는 무게없음의 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몹시 드라마틱한 대비는 여전히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일본어 원문 찾기를 시도해봤으나 아직 발견하지 못했고, 일전의 “어떤 불미스런 작은 사건 속의 a시인의 정체 밝히기”나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의 원작자 밝히기”처럼 확실한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묘하게도 이 문장들은 전부 영문과 번역본으로밖에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게 좀 의문이라면 의문이긴 하지만 라위쯔(라비치)의 <길은 멀어도>가 내게 그랬듯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것임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리고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이 문장을 엊그제 나는 누군가에게 들려주었다. 그 네줄처럼 나는 이 또한 잊지 못할 것 같다.
+
카프라 번역본에는 ‘칼파스’라고 되어 있었지만
한글로 옮긴다면 겁(겁파)에 해당하는 ‘칼파’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