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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나의 라떼

(21년만에 다시, “donovan, 그리고 행복“에 덧붙여.)

 

맛에 대해 거의 무지한 편이다. 그저 짠것 별로 좋아하지 않고 조미료 많이 들어간 음식 먹으면 구토증세가 있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혐오식품류(?)는 전혀 안먹는다는 것 정도.

커피를 상당히 좋아하지만 맛에 관해서 무뎌서 가리지 않고 잘 마신다. 커피믹스, 아메리카노, 연하게 탄 인스턴트 블랙커피, 베트남 커피, 게다가 상당히 달고 느끼한 베트남 커피믹스까지도 잘 마신다. 그래도 제일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라떼다.

카푸치노도 물론 좋지만 십수년 전에 쓰던 것 고장난 이후로는 그냥 라떼로 대신하는데 간단하게 해결한다. 우유 한컵 정도를 전자렌지에 2분~2분 30초 돌리면 거의 끓어오르는 수준이 되고, 거기 인스턴트 커피를 타서 마시는 것이다.(예전에 장출혈로 입원했을 적에 병원 조리구역에서 어느 환자 가족분이 하는 것을 보고 배웠다.) 주로 저지방 우유를 사용하지만 솔직히 거의 맛이 없다.(저지방 우유가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걸린다.)

 

 

그래서 아침에는 일반 우유로 마시곤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아침 먹기 전에 라떼 한잔 마시는 것이 작은 즐거움이 되었다. 한스푼도 안되는 커피를 넣어 살짝 향만 내는 정도고 거의 데운 우유에 가깝다. 그런데도 아침마다 라떼를 찾는 것은 그 희멀건 커피를 마시면 뭔가 따스한 기운이 몸속을 도는 듯한 느낌이 (이외에 따스한 기운 받을 곳이 그다지 없는가 보다.ㅎㅎ) 짧은 순간이나마 행복을 그리게 하기 때문이다. 푸어 카우 / 푸어 러브 ㅡ 20여년 전, 사무실서 어딘지 철없는 듯한 목소리로 읊어대는 도노반 노래를 듣다 그렸던 행복 같은 것 말이다. 여전히 내게 없거나 오히려 좀 더 멀리 있는 듯한 그 느낌에 관해 잘 알지 못하는 나는 어설픈 라떼로 대신하는가 보다.

(여기 플레이되는 도노반의 노래는 1967년에 방영된 영국 드라마에 수록된 버전이다. 달리 앨범으로 발매된 적이 없지만 일상의 숱한 소리들과 함께 보다 더 철없는 목소리가 21년 전의 내 느낌을 새삼스럽게 한다.)

 

받침 하나 달아나버린 기운없고 서늘한 시월 밤에.

 

 

/2019. 10. 20.

 

 

 

 

+어린 시절 어머니 따라 아버지 돌아오시는 공항에 갔다가 음료매점의 높은 의자에 앉아 마셨던 따뜻한 우유 한잔도 생각이 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봤던 공항, 메뉴에 적혀 있는 음료에 관해 알지 못해 더 맛있는 것들, 예를 들어 코코아나 환타가 아닌 우유를 사달라고 한 것을 내심 후회했었는데 지금은 그 맛도 그립다.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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