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유투브에서 영화 <way back>의 영상을 다시 만났다. 2010년도엔가 만들어진 영화로 괜찮은 출연진에 비해 영화는 그리 썩 훌륭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잊지 못하는 것은 나름의 사연이 있다. 영화는 내가 결코 잊지 못할 어떤 이야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고3이던 시절, 어떤 죄의식과 번민으로 하여 수험생으로서의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고 교과서/참고서가 아닌 책만 읽던 때였다.(j신문사에 있는 p가 내 사연의 중심이었다.) 당시에 처음으로 손에 닿았던 책, <1984년>을 읽고서는 망상에 가까울 만큼 몰입되었었다. 메쏘드 연기에 비할만큼 윈스턴 스미스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때 다음으로 읽었던 것은 <제 3의 사나이>(이 책 또한 p를 생각나게 했다)와 <동물농장>이었고 그리고 우연히 내 눈에 들어온 책이 <길은 멀어도>였다. a gamble for life, as told by ronald downing이란 설명과 함께 슬라보미르 라위츠라는 저자의 이름이 있던 책이었다.
분명히 기억하지만 내가 중학교 2학년이었던 시절에도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집을 뒹굴고 있었던 책이었다. 왜냐면 그 당시 우리집에 하숙하며 내게 수학을 가르치기도 했던 대학생이 책을 다 읽고선 ‘명작같다’고 했던 것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길게 평을 하진 않았지만 나는 그가 상당히 감동받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고 집에 읽을 만한 책이 그리 많지는 않았기에 입시공부에서 아예 손을 떼었던 내 손이 거기 닿은 것이다.
길은 멀어도…… 책을 펼친 이후에는 단숨에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좀 상투적이지만 꽤 드라마틱한 스토리에 자유를 향한 의지와 갈망, 그리고 결말부의 짙은 허무감은 내 마음을 사로잡았고 깊은 인상을 남겼다. 대학생 형의 말처럼 ‘명작같은’ 이야기였다. 게다가 실화라는 사실어 더한 무게감을 주었다.
그리고 크리스티나는 이 넌픽션에 나오는 여자의 이름이다. 주인공 일행이 시베리아의 수용소를 탈출해서 바이칼호를 지날 무렵 만났던 소녀였다. 동유럽인 일곱명과 미국인 한사람으로 이루어진 탈출자들과 러시아 소녀가 일행이 되어 라사, 인도를 향해 간다. 다들 크리스티나를 지켜주려 애를 썼고 마르친꼬바스가 그녀와 특히 가까웠다는 것도 나는 아직 기억한다.(오늘 영문판을 찾아 확인한 그녀의 이름은 크리스티나 폴란스카였다. 비틀즈 어느 노래 가사처럼 열일곱살이었고.)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준비없이 고비사막을 지나면서 큰 시련을 겪고 그곳에서 크리스티나도 결국 목숨을 잃는다. 나중에는 마르친꼬바스 또한. 결국 네 사람은 그 길에서 죽음을 맞고 네사람은 살아서 인도에 도착하는 이야기인데 이별의 순간이 담긴 짧은 마지막까지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베리아서 인도까지의 사선은 그들이 탈출 후 걸어서 지나간 길이다.)
이 책은 십수년 전에 <얼어붙은 눈물>이란 ‘번안 제목’으로 재출간되기도 했고 <way back>이란 제목의 영화로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는 원작과는 꽤 다른 부분들이 많았고 재출간된 책 또한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사연을 여전히 <길은 멀어도>로 기억한다.
이 책에 대해서 긴 시간에 걸쳐 몇번 글을 썼고 이야기했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게 과연 ‘넌픽션’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훨씬 더 많다. 미국의 스파이로 오인받았다는 ‘스미스’라는 의문의 존재를 생각해도 그렇고 포로수용소의 소장 부인이 탈출을 돕기 위해 가방을 만들어주고 음식까지 제공해준다는 것도 쉽게 믿어지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라위츠의 동료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친척이나 지인들 가운데 그 누구도 존재를 드러낸 사람이 없다는 점은 더 강한 의심을 갖게 한다. 이 책이 발간되고 한참 동안까지는 공산국가 출신들이어서 그랬다고 해도(라위츠는 런던에 살았다) 소련 연방 해체 이후에는 정보가 어느 정도 개방된 상태였기에 당사자나 그의 주변 인물들이 나타날 수 있었음에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미스터 스미스 뿐만 아니라, 그와 긴 여정을 함께 했던 자로, 콜레메노스까지도.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이 가짜였다고 하더라도 허구 속에서 어떤 절실함과 진실을 느낄 수 있기에 적어도 그 책을 읽던 나는 그랬었기에 치명적인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라위츠의 거짓은 라위츠의 거짓이고 나의 느낌은 나의 것이라 믿기에.
<길은 멀어도>의 수많은 장면들 가운데 가장 아팠던 대목 하나가 바로 고비 사막에서 크리스티나가 끝내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나는 오래도록 그 모습에서 누군가를 그리고 상상하기도 했다. 테리 잭스의 크리스티나가 더욱 아프게 들리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아마존의 정글에서 황금왕관을 쓴 모습에서 나를 떠올리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사막이라는 혹독한 미로 속에서 속절없이 쓰러진 크리스티나에서 나는 틀림없이 누군가를 그려내곤 했었다.
라위츠의 미심쩍은 넌픽션이나 테리 잭스의 감정적 노출이 과도한 노래나 그리 대단한 무엇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서 그런 ‘수준’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은 없다. 그저 안타깝고 그리운 뿐인 사연이 내 안에 있을 뿐이다. 라사와 마니차, 소박하고 인정 넘치는 몽골과 티벳의 풍경들, 사막 한가운데서 의미없이 녹슬어가는 깡통 같은 사연들…….
온 바다가 딸기밭으로 바뀌던 것을 꿈꾸던 시절, 빛나던 시절의 크리스티나를 기억하며.
i had a dream about you, christine
i dreamt that flowers growing sideways so green
and butterflies covered all of your head
and an angel slept beside your bed……
/chritina, terry jac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