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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으로부터의 편지

<내재율>
내ː재-율, 內在律
자유시나 산문시 등에서 문장 안에 잠재적으로 깃들여 있는 운율. ↔외형률(外形律).
/구글 사전

 

 

언제나 낯선 길 ㅡ 오늘 사무실 나와 보니 문 앞에 종이 하나 꽂혀 있었다. 손님의 메시지인가 했는데 아래층 맥주가게서 빼곡히 적어놓은 사연이었다. “만나 뵐 기회가 많지 않아서 편지 드립니다”로 시작한 글은 실은 일종의 수기식 수도요금 청구서였다.

오래된 낡은 건물이다 보니 계량기 하나로 서너 군데서 나눠 내고 있는 상황으로 예전엔 3층에 사시던 분이 총무 역할을 하셨으나 그분 이사 가고는 1층이 그 일을 맡게 되었다. 안 그래도 몇 달 지났는데 어째 연락이 없어 한꺼번에 받으려나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청구서가 날아온 셈이다. (약간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부분도 있었으나…) 요금을 1층에서 맡게 된 경위부터 해서 몇 달간의 요금 총액과 기간, 내가 부담해야 할 부분, 심지어 한 달가량의 공백까지 고려해서 계산을 해둔 것이었다.

그래서 곧장 입금을 하고, 적힌 번호로 미리 챙기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추후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간단하게 부담할 요금만 알려주면 된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다시 들여다보니 작은 노트 한 장에 빼곡히, 삐뚤빼뚤 글씨가 새삼 예쁘게 보였다.

어쩌면…… 일종의 ‘내재율內在律’ 같은 것. 때로는 이런 쪽지 한 장이 내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이었다. 그게 산문이든 운문이든 상관없이 번드레한 ‘외형률外形律’처럼만 보였던 것 ㅡ 오늘 우연히 본 어느 신문 ‘마음치유사’의 도무지 치유에 도움이 될 수 없을 것 같은 애송시와는 비할 수도 없었다.

여기서의 내재율/외형률은 글자 숫자가 맞네 안맞네 하는 것이 물론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마음의 운율 같은 것, “5월분은 한 달 동안 문 닫아놓으셔서 반만 주시면 될 것 같네요. 이상한 점 있으시면 (ooo-oooo)번으로 연락주세요”가 그랬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韻이고 律이다. 아무나 좀처럼 쓰지 못하고 대부분 읽으려고도 하지 않는.

 

 

/2019. 5. 31.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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