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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가 궁금했지요

금요일에 반납해야 했지만 속에 탈이 나서 이틀을 꼼짝없이 누워 지냈습니다. 그래서 월요일 출근하면서 도서관부터 들렀지요. 아 그런데 오늘이 쉬는 날이었네요. 도서관 앞 주차장에 와서야 알았습니다. 몇대의 차가 있는데 출입구는 쇠로 된 장벽으로 막혀 있었습니다. 그것 좀 쌤통이다 싶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들 주인에겐 더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연체 상태라 다른 책을 빌릴 수도 없는데 휴일이라도 반납기가 있는 것을 알았기에 계단을 올랐습니다.

지난해 리모델링이 된 도서관은 반납기도 새로 갖췄더군요. 당장 눈앞에 보인 것은 ‘타도서관 서적 반납기’여서 잠시 당황했지만 옆을 보니 이곳 도서관을 위한 반납기가 따로 있었습니다. 예전의 그냥 집어넣는 수동식에 비해 스크린까지 달린 처음 보는 기계라 잠깐 멈칫했습니다만 그리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두툼한 가짜 하드커버의 보르헤스가 들어가니 모니터에 책이름이 나왔습니다. 책은 내 손을 떠나 서서히 밀려들어가는가 싶더니 저 아래 바닥, 틀림없이 아무런 쿠션도 책을 위한 보호대도 없는 양철 바닥으로 그 무거운 책이 떨어지며 큰 소리를 내었습니다. 놀라기도 했지만 마음 한 구석이 아픈 느낌이었습니다.

덜컹 겁이 난 나는 두번째로는 얇은 시집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꽤 큰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허수경의 시는 내가 희망했던 것처럼 보르헤스 위로 떨어지지 못했는지 역시나 큰 소리가 났습니다. 세번째는 다른 두꺼운 보르헤스였습니다. 반납기 투입구로 조심스레 조심스레 책을 넣었지만 소용없는 짓, 들어갈 때만 천천히였지 급전직하로 떨어지더니 바닥이 비명을 질렀습니다. 대체 다른 책이 있기나 한지 1미터쯤 된느 거리를 그냥 낙하하는 것이었습니다. 네번째의 자그마한 에세이 또한 어떠한 요행도 없이 무게에 부족하지 않은 비명을 지르고서야 조마조마한 반납식이 끝을 맺었지요.

책을 수거하는 기계를 만든 사람은 이런 상황을 생각하지 않았는지 안타까웠습니다. 그저 바코드를 이해해서 대여자를 찾아내고 반납등록을 하고 영수증을 찍어내고 그것 뿐이었을지요. 제작자가 그렇게 만들었다 한들 도서관인데, 도서관에서 기계를 시운전했을텐데 까짓것 추락은 괜찮은 것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깟 모서리의 상처 따위는 상관없었을지도요. 그렇게 떨어진다고 책을 읽을 수 없게 되지야 않겠지만 멀쩡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적어도 보르헤스 두권은 묵직했던 만큼 그랬을 겁니다.

내 책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열광하며 뒤적인 책도 아니었지만 마음에 뒀던 내 책인양 아팠습니다. 저 아래 바닥에 낡은 신문지 몇장이라도 깔아놓았더라면 그렇게까지는 아니었을텐데 말입니다. 쿠션이 필요한 것이 도서반납기의 바닥인지 내 마음인지 헷갈렸습니다. 정작 궁금한 안부들은 묻지도 묻지도 못한 채 말입니다. 떨어졌거나 밀쳤거나 원치 않게 달아나버린 한 권 또는 한 권 같은 페이지들 말이에요.

 

 

/2019. 5. 20.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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