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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라듸오

<라듸오 1973>을 썼던 1년 혹은 2년쯤 뒤에 나는 <라듸오 1974>도 썼다. 이전의 라듸오보다 좋은 제품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으니 많은 공산품의 경우처럼 그냥 해만 바꿔 출시되는 엇비슷하거나 그만 못한 물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뭔가 완제품이 되기엔 부족한 시제품 같은 것이어서 그랬는지 나는 그것을 다른 사적인 공간에 올렸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다른 이의 사이트였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 좀 고쳐서 출하를 해야지… 하고선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내 라듸오를 둔 사이트의 주인과 트러블이 생겼다. 내가 제품을 뒀던 곳도 닫혀버렸다. 내 공간처럼 여기고 편히 생각했으나 돌아서면 남이라는 것, 잠시 머리를 스쳤다. 마음이 상해서 제품을 찾아달라고 했더니 링크 주소를 보내왔다. 다만 공개된 공간이 아니었을 뿐, 그곳에 내 라듸오는 그대로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 트러블은 진정이 되었고 그곳에 내 시제품 라듸오가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기에 다시 옮겨오지도 않았다 ㅡ 어떤 믿음의 징표처럼. 그 상태로 꽤 시간이 흘렀고 결국 현실에서의 연은 끊어지고 말았다. 다시 라듸오의 링크를 찾아간 적이 없는 나는 결국 1974년의 라듸오를 잃어버렸고 그 제품의 모양새며 성능에 대해서도 깡그리 잊어버리고 말았다. 지금 다시 라듸오를 만든다면 아마도 그때와는 전혀 다른 모양새에 더 모자란 성능의 조악한 제품이 나올 가능성이 더 높기에 나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라져버린 라듸오가 수신하던 전파는 여전히 어딘가를 떠돌고 있다. 어쩌면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형태의 수신기가 그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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