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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는 날의 리스트 +

최근 친구 아버님의 문상을 다녀와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만약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장례식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실없는 상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사실 그 생각은 한 두해 전, ‘노래 리스트’ 만들다가 시작된 것이다. <캡틴 판타스틱>에서 화장한 유골을 공항 화장실(^^)에 뿌리는 장면을 보면서 느낀 것도 포함하여. <죽고 난 뒤의 팬티>처럼 소심한 삶의 안할 걱정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이렇다. 확실한 것은 화장이고 내 몸에 대해서라면 어떤 흔적도 따로 남기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장례식 자체를 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건 지금 명확히 할 수가 없고 나는 그저 그런 행사(?)가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노래나 실컷 틀어줬으면 싶다. 내가 들을 수는 없으니(피카소의 마지막 말처럼) 몇 안되는 가까운 사람들이 그 노래들로 나를 기억했으면 하는 바램 같은 것이다. 아마 슬픈 노래도 있고 신나는 노래도 있고 웃기는 노래도 있고 고적함도 빠질 수는 없을 것 같다. 산소처럼(?) 상큼한 노래도 있고 재미없이 무덤덤한(!) 노래도 있고 그럴 것이다. 당연히 제사 같은 것은 필요 없지만 생일이나 떠난 날에도 역시 커피나 술이나 한잔 하며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어줬으면 하는 바램은 있다.  내 마음 같은 시와 소설과 에세이와 경전의 몇줄을 나눠주거나 읽는 것도 좋겠다. 내 글에 대해서도 그런 마음이 들지는 잘 모르지만 당장에 떠오르는 것은 없다. 아무튼 그런 이유들로 해서 언제인지 모를 내가 이 세상에 없는 날까지의 작업 가운데 하나는 그 리스트를 만드는 것이다. 노래와 글들이 평소 내가 즐겨하거나 좋아한다고 알려진 것들과 꽤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귀가 아닌 마음에서 플레이 되는 것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알 수조차 없을) 네가 없는 날의 리스트이기도 하다.(그 가운데 하나를 말하자면, 어떤 느끼한 목소리가 노래하는 “초원의 자장가” 같은 것이다. 그 곡조는 내 마음을 적막하게 만들고 쓰라리게 만들지만 결국은 그 상처들을 어루만져 주고 나를 달래준다. 미시시피 존 허트의 노래도 빠질 수 없을 것이고 그리움 가득한 이국의 “구절초”라고 할 “마르가르다의 향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문장에 관해서라면 알렙이나 델레나 엘리아…의 몇줄 같은 것, 머나먼 이국땅에 핀 스티븐슨의 금작화 같은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그저 바램일 뿐, 어떤 의미에선 이미 이루어졌다.

 

 

/2019. 3. 15.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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