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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 메모랜덤

그러고 보니 queen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생각하면 좀 까마득한 느낌도 들고. 그렇게 화제가 되었던 <보헤미안 랩소디>도 나는 무덤덤했다. 어릴 적에야 퀸의 노래도 나름 좋아했지만 나로선 그 영화를 통해 추억을 반추할만큼 몰입이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 나름의 기억을 통해 퀸에 대해 잠깐 돌아보았다.

내가 처음 퀸을 알게 된 것은 열넷, 열다섯 쯤이었지 싶다.  <월간팝송>에서 보았던 흐릿한 흑백의 퀸의 사진들은 (이제 와서 보면) 약간은 동성애 코드가 느껴지는 모자와 가죽 재킷 같은 패션들도 있었나 보다. 그때 내가 알았던 노래라곤 we will rock you와 다른 두어곡 정도였던 것 같고, 우연히 카세트 테잎에 녹음된 빌리 조엘의 the stranger를 들으며 혹시 퀸의 노래는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고등학교 시절 조금 더 듣긴 했으나 ‘아주’는 아니었다. 그때 영어 과외를 했는데 선생님의 딸도 같이 수업을 했다. 그 집에서 (그녀가 틀어줬던) 퀸 노래를 몇 번 들었던 생각이 난다. 그 가운데 하나는 bicycle race였던가 싶다. 내가 태어나서 이성과 처음으로 컨택(‘4종 근접 조우’는 물론 아니었다!)한 것이 그녀였는데 우습게도 내가 아니라 그녀쪽이었다. 그것도 그녀가 서울로 이사가기 직전에서야.

어느 날엔가 우리집이랑 매우 가까운 곳에 살았던 그녀가 집앞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게 카드인지 편지인지 사연을 담아 전해줬고 방학때 내려와서 보자고 했던 생각이 난다. 그녀가 you are my best friend를 좋아한다고 했던 것도. 그래서 나도 가끔 그 노래를 통해 그녀를 그려보곤 했다. “whenever this world is cruel to me……”.

 


/you are my best friend

 

여름방학이 되어서 그 친구는 정말 부산으로 내려와 연락을 했으나 나는 그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너무도 당황스러웠던 까닭에 만나는 것도 다음 날로 했었다. 나는 버벅대기만 했을 뿐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나 스스로도 이해 못할) 뜬금없는 소리에 엉뚱한 행동만 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녀는 몹시 실망했을 것이다.

콜린 윌슨의 <살인의 철학> 후반부에 나오는 어떤 소년(청년?)이 여자 친구와 만나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급기야 그녀를 살해해버린 사건을 기억한다. 어쩌면 나는 그 비극적인 사건의 주인공과 비슷한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mama, just killed a gial ㅡ 결과 또한 다르지 않아 나는 그해 여름 하루에 어이없는 방식으로 그녀를 죽이고야 말았다. 사실은 그녀가 날 죽이고 떠났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만.

그때의 작은 사건만큼 어이없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남녀불문, 나는 비슷한 살인을 이후로도 꽤 많이 저질러왔고 그때나 지금이나 그것에 관한 부끄러움은 회복불능이다. 스스로도 납득하기 힘든, 불가해한 미스터리에 관해 이해를 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끄적이는 것도 그 회복할 수 없음에 관한 미미한 변명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퀸의 어느 레코드판에 내 잘못으로 만들어진 치명적인 흠집이 여전히 판을 튀게 만들고 있기에.

<hot space> 앨범까지는 거의 다 들었지만(“let me hear your body talk”라던 올리비아 뉴튼 존의 피지컬을 좋아했듯 그 앨범의 body language 가사를 좀 좋아했었고 life is real도 가끔 들었다)  이후에 나온 느끼한 팝 스타일의 음악들은 거의 들은 적이 없었고 보헤미안 랩소디가 난리법석일 때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차라리 다큐멘터리였더라면 나는 영화보다는 조금 더 좋아했을지 모르겠다.

play the game을 들을 때는 담배를 피웠고(“light another cigarette and let your self go”), save me에서처럼 나는 “naked and far from home”이라 느끼곤 했다. 하지만…… 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오래, 내 가슴도 너를 잊은지 너무도 오래 ㅡ 이제는 딥 퍼플 만큼이나 듣는 일이 별로 없는 퀸이지만 딥 퍼플의 몇몇 곡이 가끔 마음에 어리듯 생각나는 노래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옛날의 어이없는 짧은 만남에 대한 변명을 지금 읊어대는 것처럼.

묻히고 잊혀지고 지워지고 사라졌다고 한들 깡그리 묻히는 것은 없다. 오래 전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표어로 우스개 소리 하는 것 들은 적 있다. 다시 보고, 다시 보고, 또 다시 보고…… 끝없이 봐야 하는 꺼진 불처럼 아주 가끔은 그런 것이다.

 

“don’t you hear my call
though you’re many years away
don’t you hear me calling you……”
/39

 

 

 

/2019. 2. 11.

 

무치

데.호따.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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