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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그런 하루 ◎

십수년 전 어느 가을 날이었다. 창가 시들한 허브 화분에 이름모를 벌레 한마리 천천히 날아 들었다. 가지가 아닌 화분 옆면에 매달린 듯 자리를 잡더니 그대로 멈추었다. 아주 작은 벌레는 아니었고 휴식이라도 취하는가 싶었는데 다음 날에 봤을 때도 꿈쩍 않는 것이 곤충은 그렇게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특이한 모습에 나는 사진을 찍었고 묘한 모양새가 ‘좌탈’을 생각나게 해서 중의적인 의미에서 “어딘지 불법적인“이라는 제목을 붙였었다.(이제 찾아보니 2004년 10월이었다.)

어제는 종량제 쓰레기 봉투를 버리는 날이었다. 나름 절약하느라 비닐봉투를 눌러 담을 수 있는 쓰레기통을 사용하고 있는데 쓰레기통 두껑으로 누르는 방식이다. 그래서 언제나처럼 두껑을 들고 입구까지 가득한 쓰레기를 누르려는 참에 보니 입구 안쪽에 손가락 한마디 만한 가느다란 벌레가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죽은 벌레인가 싶어 슬쩍 건드렸더니 느리지만 움직이는 것이었다. 쓰레기 봉투를 꺼내려면 먼저 쓰레기를 꽉꽉 눌러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 벌레를 짓이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결국 그냥 두고 왔다.

오늘 사무실 나와서 보니 화장실 벽에 어제의 그 벌레가 붙어 있었다. 오래 전 화분에 날아와 앉았던 잿빛 곤충처럼 그냥 꼼짝않고 매달려 있었다. 건드리면 움직일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다. 아무 것도 합당한 것은 없고 그 무엇이 불법적인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퀘퀘한 그 세상에 매달려 있는 것이, 또는 편히 쉴 자리를 찾는 것이 그들 벌레의 일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것이 어제 쓰레기를 버리지 못한 유일한 이유였다. 어떤 한 세월이 내게는 그런 하루였다.

 

 

/2018. 10. 19.

 

무치

데.호따.무치

2 thoughts to “내게도 그런 하루 ◎”

  1. 어쩌면 우리들 모두 누군가에게는 한많은 세월이 또 누군가에게는 그저 한순간일뿐이겠지요.
    계단 한구석에 먼지와 함께 날리던 나비가 생각나는군요.
    그 바람의 한순간이 그 한세월의 마지막이었으니.
    버리지 못한것이 쓰레기였을지…

    희미한 달을 보면서 걸어온 그 길이 누군가에게는 어떤 길이었을까요.
    깊어가는 가을이 아려옵니다.

    1. 지난 달 육교 올라가다 어느 한 순간 눈에 띄었던 매미 날개 한쪽도 생각나네요.
      그런 사소한 장면들이 묘하게도 마음을 사로잡는 요즘입니다.
      예전에도 이런 때가 있었던가 모르겠습니다.
      아주 깊이 잠들고 싶은데 반대로 부득부득 깨어 있습니다.
      기타의 섬세한 선율 너머
      거친 한숨 같은 차벨라 바르가스의 목소리가 어떤 마음을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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