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말할 수 없는 그것

1.친구가 에러났다고 가져온 외장하드를 좀 살펴봤다. 데이터 복구회사에 가서 문의를 했더니 상당한 고액이라 포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방면으로 그다지 경험이 많지도 않은 내가 어찌어찌 수리에 성공하여 대부분의 에러가 해소되었다. 그 과정에서 부득불 하드의 내용들을 일부 체크하게 되었는데 나름 오타쿠 기질이 있는 친구라는 것, 새삼 알 수 있었다. 처음엔 친구가 적어준 폴더만 조심스레 카피를 하고 하드디스크의 문제 해결을 시도한 결과, 본의 아니게 110% 복원이 된 것이 실은 좀 난감하다. 그게 본래 존재했던 폴더인지 아니면 휴지통에 있던 것이 복구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 10%를 그대로 줘야 하는지 아니면 삭제하고 주는 것이 맞을지 잘 판단이 서지 않지만 대부분 다 복구되었다고 하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이 맞을 것도 같다.

 

2. 작년부터 올해까지 내 삶에 몇가지 파란이 있었다. 하나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생각도 못한 것이었다. 내 잘못과 책임이 있기에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던 일련의 일들로 절망했고,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사건은 나를 힘빠지게 했다. 쉽사리 해결될 수 없는 것들임에 두가지 괴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하루 하루는 덧없고 기계적이다. 올해 여름 그 가운데 하나의 문제를 풀어보고자 나름 열심이었으나 모두 수포로 돌아갔음을 깨닫게 된 이후론 그냥 되는대로 흘러가는대로 지내고 있다. 그저 하루를 땜질하고 있을 뿐, 2017년의 <the endless> 속 마을의 눈에 띄지 않는 한 모퉁이에 내가 살고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것 같다.

 

그대 있으니 나 또한 있고
그대 없으면 나도 또한 없음이라
말로 이루어진 사원을 꿈꾸었으나
有와 無를 모두 세우지 아니한다 했으니
쉽사리 발설했다 두고두고 후회하면서도
말하지 못해 형용할 수 없어 미칠 것 같은
바로 그것

 

3. “말할 수 없는 그것”을 쓸 때도 그랬지만 이제는 괴로움 마저 아득해진 것인 형용할 수 없어 미칠 것 같은 마음도 이젠 무디어져 무력감만 남았다. 그러니 “누구… 시온지……“와 비교한다면 극과 극 같은 차이를 느낀다. “오늘처럼 비루한……”을 쓰면서는 엉뚱한 상상 속에 헛된 다짐이라도 했으나 그 제목이 말해주는 합리화처럼 결국은 비루하게 끝이 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영영  달아나버린 당신, 어쩌면 영원토록 말할 수 없는 그것, 있었다는 사실마저도 희미해질 즈음이면 말이다.

 

 

/2018. 10. 16.

무치

데.호따.무치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