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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lum seninle : 너와 함께 이 길을

“아카리… 부디, 이만 집으로… 돌아가 있어준다면 좋을텐데……”

 

거의 열흘이 넘도록 뭔지 모를 몸살 같은 것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주 벌초 갔을 때도 그래서 내내 힘들었고 오늘까지 마찬가지다. 그 사이 몸살약도 이것저것 먹었고 오늘도 약이 필요한 것 같다. 나이 들어 보는 만화가 젊은 날의 느낌과 같을 수는 없지만 가라앉은 몸을 눕힌 채 대충 봤던 <너의 이름은>과 <초속 5센티미터>를 다시 봤다.

<너의 이름은>이 좀 더 드라마틱했지만 나는 <초속 5센티미터>의 첫번째 단편, 폭설 속에 하염없이 연착하는 기차 속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토오노 다카키의 심정이 어떤 이의 삶 전반에 걸친 어떤 느낌과 비슷했던 까닭이다. 신기하게도, 그리고 다행이 모골라의 노래와 <초속 5센티미터>가 만나는 지점이 있어 아래에 링크했다. 모골라는 1968년에 결성되어 40여년을 활동해온 터키 락 밴드의 대표 주자 가운데 하나로 ‘(터키에 있는) 몽골리안’을 의미하며, 노래 ‘요룸 시닌레 yolum seninle’는 ‘너와 함께 이 길을’이란 뜻이다. 노래의 배경이 된 애니는 <초속 5센티미터>의 첫번째, ‘桜花抄 벚꽂 이야기’이다.

 

 

저녁 7시가 아닌 11시 15분 도착. 그것이 비극적이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대개의 현실처럼 토오노 다카키가 여자 친구(시노하라 아카리)를 만나지 못한 것으로 이야기가 이어졌다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서두의 인용은 그런 내 심사를 대신하는 대사였다.

그러고보니 내 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 다르지만 그런 허탈함을 불러온 일이 있기는 했다. 여름방학때 고향에 있는 외가집에 놀러 갔다가 거기서 초등학교 1학년 때의 누군가를 만난 것이다.(아이들의 놀림으로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울던 뒷모습, 그녀의 두갈래 땋은 머리가 아직도 생각이 난다.) 외가집에 있는 며칠 동안 그녀와 한 두번 따로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가 초록색과 유치환의 깃발을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도 기억난다. 우리는 어느 일요일 부산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으나 그녀는 그날 오지 않았고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그날로부터 멀지 않았던 다른 일요일, 몰래 밀양으로 간 나는 그녀의 집까지 찾아갔으나…… 당황한 그녀의 모습을 잠깐 보았을 뿐,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리운지난날의기억들이변한다모든것이변한다
/지주회시,이상

 

이 한줄은 그해 가을과 겨울 내 마음의 모든 것이었고 그래서 기차 속의 토오노군의 심정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세번째 단편에서 철로 너머 보이지 않는 그녀에 분개하는 청춘들의 소감은 그 기차처럼 나를 떠난지 오래, 애니메이션 속의 노래가 내겐 별로였지만 가사 한 줄은 생각난다. 이 길 함께 하지 못한 그 누구일지……

 

こんなとこにいるはずもないのに
이런 곳에 있을 리가 없는데.

 

 

/2018. 9. 23.

 

무치

데.호따.무치

2 thoughts to “yolum seninle : 너와 함께 이 길을”

  1. 자주 아프신거 아닌지..
    좀 나으셨나요? 이렇게 일교차가 큰 날들은 조심해야하는데.
    아프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눈내리는 기차역을 보면 ‘철도원’이 떠올라요. 너무 감동적으로 봐서인지.
    ‘너의 이름은’은 봤는데 이건 안봤어요. 찾아봐야지.
    이작자님은 추억이 아주 많으신거 같아요.
    전 아무리 파보아도 말라버린 우물같은데..

    그리운지난날의기억들이변한다모든것이변한다

    참 맞는말이지요.

    1. 당시로선 꽤 쓰라린 느낌이어서 지금도 추억이란 생각은 잘 들지가 않습니다.
      서울에서 밀양까지… 어느 쪽이 먼저였던지는 가물가무랗지만
      그해에는 서울로 전학 갔던 어떤 여학생이 부산을 와서 만나기도 했는데
      역시나 그 잠깐의 만남으로 끝을 맺었지요.
      아무튼 그 작은 두 사건이 상당한 컴플렉스가 되어 오래도록……

      저는 철도원 하니까 한참 더 오래된 옛 영화의 처량한 기타 소리가 먼저 생각났습니다.
      오늘따라 그 멜로디가 생각이 나서 한번 들어봤습니다.
      늘어진 테이프의 추억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오늘 출근했을텐데 그냥 온종일 누워서 지냈습니다.
      아플 일이 수두룩한 요즘이니 그럴 수 밖에 없는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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