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의 이른 아침, 바짝 마른 마당 텃밭에 물을 주고 오신 모친 손에 아주 큼지막한 참외 하나가 들려 있었다. 마당 한귀퉁이에 과일 껍질 같은 것 버리는 장소가 있는데 그 주변에 언제인지도 모르게 참외 하나가 자라고 있었나 보다. 자칫 썩혔을 수도 있었을텐데 용케 찾아 오셨다. 물 주고 거름 주고 비료 줘가면서 키운 참외가 아니어서 단맛은 좀 못했지만 어른 주먹보다도 큰 크기에 갓 따온 것이어서 부드럽고도 시원한 맛이었다. 만약 참외 모종을 심어서 키웠다면 이렇게 잘 익은 참외를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시를 보았다고 말한다면 과한 표현이겠지만 2001년의 어느 여름날 김해 보현사 스님께 들은 그대로, 그리고 그 무렵 쓴 시 그대로였다. 영글었는지도 몰랐을 그 어떤 무심함,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길 없으나 ——.
누가 뱉어낸 무심함이었는지
노란 참외 하나는 저 홀로 영글었다
/내 마음의 뒷켠, 2001. 9. 8.
작은 텃밭에 참외모종을 몇개 심었습니다. 2,3 개월이 지나자 잎과 덩쿨은 무성한데 열매는 맺힐 기미가 없습니다. 꽃도 피었지만 열매는 여전히 기별 없습니다. 여름이 끝나기 전에 결실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에선 학수고대해도 얻을수 없는 귀한 열매 소식에 괜히 주절거려 봅니다.
농사가 그런 것 같습니다. 숙련된 농부가 거름 비료 줘가며 땀을 바치면 어느 정도 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늘 비슷하게 가다 말곤 하는가 봅니다. 창녕에서의 모친의 일도 대개는 그랬습니다. 오늘 아침 참외의 씨를 따로 보관해두자고 했는데 내년엔 다른 소식이 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JH님의 작은 텃밭에도 축복같은 무심함을 기원해봅니다.